삼성전자만 3800만달러 타격 입을 듯
[아시아경제 조유진 기자]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선지 8일째를 맞았지만 한진발(發) 수출·물류대란 사태가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다. 한진그룹이 8일 1000억원을 자체 조달해 한진해운에 투입하고 정부당국과 해운업계도 지원에 나서며 숨통은 트였지만 추가적인 지원과 대책이 없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수출기업 타격…삼성전자만 3800만 달러= 한진해운 법정관리 개시 8일째로 접어들면서 수출입 기업들의 타격은 확산되고 있다. 대기업부터 영세 수출중소기업까지 대체선박 확보에 비상이 걸렸지만 운임도 큰 폭으로 오르면서 만만찮은 추가 비용을 떠안아야 할 처지인데다, 납기 불이행 등에 따른 소송 리스크 확산 등이 현실화되고 있다.
한진해운에 화물을 선적한 화주는 8300여곳으로 화물가액은 140억달러(약 16조원)에 달한다. 삼성전자의 경우 미국 캘리포니아주 롱비치항구 앞에서 떠돌고 있는 2척의 한진해운 선박에 2450만달러 상당의 디스플레이 제품과 1350만달러 등 총 3800만달러(약 416억원) 상당의 가전제품이 각각 실려있다. 항만물류업자와 노동자들이 한진해운의 지급능력에 의문을 갖고 있는데다 대금결제 지연과 불능 가능성을 우려해 하역작업을 꺼리고 있어서다.
삼성측은 하역작업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삼성전자 제품을 판매하는 유통업체와 삼성전자 멕시코공장의 가동에 피해를 주게 된다. 이들 화물을 대체 수송하는 데에만 최소 항공편 16회에 880만달러의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의 HP도 142개 컨테이너의 발이 묶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소 수출업체들의 사정은 더욱 열악하다. 원자재를 수입해 화장품을 생산하는 A사는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운임 상승 부담을 안고 대체 선박을 찾았지만 추가 비용 투입으로 적자를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고, 식료품 수출업을 하는 B사는 과일 등 시급한 물량을 운송할 외국 선사를 수배 중인데 선사마다 최대 2배의 웃돈을 요구하고 있어 난감한 상황이다.
◆한진해운발 조선업 위기= 국내 조선사는 국내 해운사 보다는 외국 해운사의 발주량에 따라 울고 웃는다. 업계 일각에서는 국내 1위 해운사가 사라지면 선박 발주량이 줄어들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작년 국내 조선사가 국내 선사로부터 수주한 선박은 모두 25척(106만CGT)으로, 글로벌 수주량 248척(959만CGT)의 약 10%에 불과하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배를 빌려준 외국 선사들이 용선료를 제대로 못 받을 가능성이 커지면서 볼똥이 튀게 됐다. 이들 선사는 과거 국내 조선업체에 선박을 여러 척 발주한 고객이라는 점에서 한진해운 사태로 손해를 입을 경우 신규 발주가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진해운의 최대 용선주인 시스팬이 과거 10년간 한진해운에 컨테이너 3척을 빌려주고 받은 돈은 3억6370만달러다. 한진해운은 지난달까지 이미 1860만 달러를 연체했다. 시스팬이 보유한 선박 113척 가운데 절반가량인 58척은 국내 조선소가 건조했다.그리스 선주사 다나오스도 한진해운과 8척의 용선 계약을 맺고 있다.
다나오스가 보유한 전체 선박 58척 중 48척은 현대중공업그룹, 삼성중공업, 한진중공업, 성동조선해양 등 국내 업체가 건조했다. 업계 관계자는 "한진해운으로부터 용선료를 지급받지 못하고 계약이 해제되면 새로운 용선처를 확보해야 하지만 해운업황이 바닥을 기고 선박 공급량이 과잉인 상황이라 이 또한 여의치 않다"라면서 "장기적으로 영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 현대상선도 심상치 않다 = 한진해운발 수출대란으로 양대 국적 선사였던 현대상선의 유무형 피해도 적지 않다. 현대상선은 한진해운발 물류대란을 진화하기 위해 4000TEU급 선박 4척을 순차적으로 투입하기로 했다. 첫 선박은 부산에서 9일 출항해 광양을 거쳐 20일 미국 LA에 도착한다. 현대상선은 한진해운 소속 선박의 운항 중단으로 발이 묶인 국내 화주들 보유 화물 수송에 필요한 수요를 항차별 3000TEU 정도로 추산했다.
현대상선이 긴급 투입한 선박의 선적 예약율은 1항차 90%, 2항차는 60% 수준으로 예약률이 예상보다 크게 높지 않다. 더 큰 문제는 복편이다. 도착지에서 화물을 하역한 후 돌아오는 선박에 적재할 화물이 준비되지 않아 적자 운행을 감행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선박이 긴급 투입되면서 현재 돌아오는 편에 적재할 화물 물량을 구하지 못한 상황"이라면서 "화주들을 컨텍해 복편에 실릴 화물이 있는지 확인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와 이로 인한 글로벌 해운동맹 퇴출로 한국 선사에 대한 대외신임도 하락도 크게 우려된다. 업계 관계자는 "한진해운 사태 등으로 운임이 일부 상승했지만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로 현대상선이 영업에 지장을 받는다면 공급 과잉인 해운시장에서 현대상선은 더 큰 위기에 내몰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