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임직원 앞 애니콜 화형식…메르스 때도 이 부회장 대국민 사과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돈을 잃으면 다시 벌 수 있지만 신뢰는 한번 잃으면 다시 회복하기 어렵다."
삼성전자가 갤럭시노트7 '전량 교체'라는 해법을 내놓은 것에 대해 삼성그룹 관계자는 과거 삼성의 행적을 떠올리며 "삼성은 악재를 만날 때마다 신속하고 과감하게 정면 돌파했다"고 말했다.
1995년 애니콜 화형식, 2015년 메르스 대국민 사과, 그리고 갤럭시노트7 전량 교체까지 모두가 '신뢰 회복'에 방점을 찍은 결정이었다는 것이다.
그룹 관계자는 "숨기거나 피하지 말고 정면 돌파를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사실을 그간의 행적에서 보여준다"면서 "품질에 대한 신뢰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경영진의 고뇌가 담겨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삼성 경영진의 그같은 고뇌를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는 이른바 '애니콜 화형식'이다. 1994년 삼성전자는 당시로써는 야심 찬 제품인 무선전화를 출시했다. 애니콜 초기작으로 시장의 주목을 받았지만, 제품 불량률이 11.8%에 달했다. 이건희 회장은 불량품을 모조리 수거해 새 제품으로 바꿔주라고 지시했다.
1995년 1월 구미사업장 운동장에서 임직원 20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애니콜 화형식'을 가졌다. 수거된 불량 무선전화 15만대를 해머와 불도저로 산산조각냈고, 불에 태웠다.
당시 시가로 500억원에 달하는 제품이 잿더미로 변하는 것을 보며 삼성 임직원은 심기일전 의지를 다졌다. 삼성은 품질 개선 노력을 이어갔고, 1995년 8월 모토로라를 제치고 국내 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하는 밑거름이 됐다.
고객 신뢰를 최우선 가치로 두고 과감하게 행동하는 삼성의 문화는 지난해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1등 병원'을 자부하던 삼성서울병원은 당시 메르스 사태로 직격탄을 맞았다.
14번 환자(슈퍼전파자)가 평택성모병원에서 삼성서울병원 응급실로 이송된 이후 추가 메르스 환자가 속출했다.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장이 "국가가 뚫린 것"이라고 발언하자 책임 회피의 모습으로 비쳤고, 여론은 급속히 냉각됐다.
그러자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나섰다. 지난해 6월23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1991년 삼성전자 입사 이후 처음으로 공식 기자회견에 등장한 순간이었다. 주변에서는 직접 사과발표를 만류했지만, 이 부회장은 진정성 있는 사과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 부회장은 "예방 활동과 함께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다짐했다.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7의 일부 배터리에서 결함을 확인하고, 한국과 미국을 포함한 10개국에서 판매한 250만대 전량을 신제품으로 교환해주기로 했다. 매출 기준 250만대 교환 비용은 2조5000억원에 달하고 유통 마진 등을 고려한 실제 리콜 비용은 1조∼1조500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이번 갤럭시 노트7 전량 교환 결정은 이 부회장이 강조한 기업 문화 혁신 작업이 결실로 이어졌다는 평가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이 그동안 열린 경영을 강조했는데 이번 갤럭시노트 해법 찾기를 통해 현실로 구현됐다"면서 "직원 스스로 고통 분담을 다짐하는 모습이나 (회사가) 임직원 뜻을 수렴해 과감하게 결단한 모습 모두 인상적"이라고 평가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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