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 일찍 일어났더라면
지하철을 놓치지 않았더라면
바지에 커피를 쏟지 않았더라면
승강기 문을 급하게 닫지 않았더라면
내가
시인이 되지 않았다면
채우기보다 비우기를 좋아했다면
대화보다 침묵을 좋아했다면
국어사전보다 그림책을 좋아했다면
새벽보다 아침을 더 좋아했다면
무작정 외출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면
그날 그 시각 거기에 있지 않았다면
너를 마주치지 않았다면
그 말을 끝끝내 꺼내지 않았더라면
눈물을 흘리는 것보다 닦아 주는 데 익숙했다면
뒤를 돌아보는 것보다 앞을 내다보는 데 능숙했다면
만약으로 시작되는 문장으로
하루하루를 열고 닫지 않았다면
내가 더 나은 사람이었다면
일어나니 아침이었다
햇빛이 들고
바람이 불고
읽다 만 책이 내 옆에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만약 내가
어젯밤에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누구나 후회를 한다. 후회 없는 삶이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흔히 후회하는 것에 대해 감상적이라거나 시간 낭비라고 여긴다. 어떤 면에선 맞는 말이다. 후회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미 일은 그렇게 되었고, 지나간 일은 결코 돌이킬 수 없으니. 그리고 후회해 봐야 지금 당장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후회는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계기가 아닐까. 후회의 사전적 의미는 '이전에 행했던 잘못을 깨치고 뉘우치는 것'이다. 후회는 그러니까 자기반성이자 자기를 새롭게 기획할 수 있는 출발점인 셈이다. 더 나아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후회하고 있는 그 일들이 지금의 자신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깨닫고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고. 그때 그러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러했기에 지금 이곳에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있는 것이지 않은가. 이런 맥락에서 후회한다는 것은 비로소 운명을 사랑하기 시작했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채상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