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 풀린 공직기강의 바닥 보여준 그 사건…'천황폐하 만세', 사건보도부터 중징계 요구까지
-KEI, 초기 대응 '모르쇠' 일관. 통화 녹취록 공개되자 말 바꾸기
-'결과 먼저 내놓고' 떠밀려 시작한 진상조사…사실관계 은폐 급급
-국조실 '철저한 규명'에 드러난 진실
[아시아경제 오종탁 기자, 손선희 기자] '천황폐하 만세 삼창'으로 사회적 충격을 안긴 공직기강 해이 사건에 대해 정부가 진상을 파악하기까지는 꼬박 한 달이 넘게 걸렸다. 지난달 이른바 '개·돼지 발언'으로 공분을 산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에 대한 파면 요구가 일주일만에 나온 데 비하면 상당 기간이 소요된 것이다. 그 배경에는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과 경제·인문사회연구회(경인사)의 '의문투성이' 초동 대응 영향이 컸다.
지난 6월23일 아시아경제가 해당 사건을 첫 보도한 직후 KEI는 관련 의혹 일체에 대해 '무조건 아니다'라는 식의 거짓 대응으로 일관했다. KEI는 보도 후 불과 2시간여 만에 기자들에게 '보도는 전혀 사실이 아니며, 당사자는 그러한 말이나 행동을 한 사실이 없다'고 휴대전화 문자로 해명자료를 발송했다. 그러나 해당 워크숍 참석자만 수십 명에 이르는 만큼 관련자 조사를 모두 마치기에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KEI는 아울러 워크숍 개최 사실도 일체 부인하고 심지어 "이 센터장이 해당 매체(본지)와 통화한 적이 없다"고도 주장했다.
이에 본지는 다음 날 이 센터장과의 전화통화 녹취록 전문을 공개했다. KEI는 그제야 "통화한 사실이 맞다"고 말을 바꿨다. 또 KEI 실질적 자체 진상조사는 이날 이뤄졌다. '모르쇠' 방식의 대응에 비판 여론이 확산되자 KEI와 경인사는 '이미 결과부터 발표해 버린' 진상조사를 뒤늦게 착수, 직원 면담을 실시했다.
이 단계에서 복수의 제보자에 따르면 1월 워크숍 참석 직원 다수가 "해당 발언을 들었다"는 진술을 했다. 이미 '사실 무근'이라고 대응해 온 터라 당황한 KEI 측은 이 때부터 추궁 및 제보자 색출에 주력했다. 이후 KEI는 무리한 입막음과 통제를 한 것으로 전해졌고 국조실 감사까지 지체시켰다. 결국 KEI는 초기 부실대응과 내부 은폐 사실을 숨기기 위해 일을 눈덩이처럼 키운 셈이다.
KEI의 부실한 초동 대응은 실제 이 센터장이 초기 내부조사 과정에서 거짓 진술을 했을 개연성과도 맞닿아 있다. 박광국 KEI 원장은 아시아경제 보도 이후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현황보고에서 초기 자체 조사 결과가 순전히 이 센터장 진술에 의존해 이뤄졌다는 점을 시인했다.
KEI는 자체 조사에서 진술을 확보했음에도 사실을 바로잡기는커녕 덮는 데 급급했다. 직원들을 회의실로 몇 차례나 거듭 호출해 개별 면담이라면서 회의실 문을 활짝 열어놓고 진행했다. 열린 문 입구에는 다음 차례 직원들을 줄세워 둔 상태여서 이 광경을 지켜볼 수 있었다. 면담 내용도 대놓고 들리는 등 '진술하기 힘든 환경'을 자연스레 연출했다. 이 같은 방식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할 리 없는 직원들은 진실을 일단 숨겨야만 했다. KEI측은 '일이 더 커지면 모두가 더 힘들어질 뿐이다'라는 식의 사후 입단속도 잊지 않았다. 당시 면담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솔직히 말하고 싶어도 등 뒤에 동료 직원들이 다 듣고 있는데 어떻게 말하겠느냐"며 "'그냥 덮고 가자'는 무언의 압력으로 느껴졌다"고 토로했다.
진실은 덮일 뻔했으나 국조실이 사실확인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지고 감사에 착수하면서 결국 전말이 드러나게 됐다. 국조실은 '천황폐하 만세 삼창' 발언 사실을 확인하고, 이 밖의 각종 친일 발언 등 정황에 대한 다수 증거를 확보했다. 이어 지난달 29일 이 센터장에 대한 중징계와 박 원장에 대한 징계 처분을 KEI와 경인사에 각각 통보했다. 국조실 고위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국가·사회적 이슈가 된 만큼 대충 넘어갈 수 없어 조사를 심도 있게 진행했다"며 "친일 발언을 포함한 당시 정황들이 실재(實在)했고 KEI 직원 조사 등을 통해 사실이 확인돼 징계가 가능하다고 판단, 조사 결과를 내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편 아시아경제는 국조실의 '징계 요구' 결정에 대한 이 센터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취했으나, 그는 '언론사 직접 컨택(접촉)이 불가하다. 번거롭더라도 먼저 (KEI) 대외협력실로 연락해 달라'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만 보내왔다.
세종=오종탁 기자 tak@asiae.co.kr
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