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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폭염에 신음하는 쪽방촌 독거노인들

시계아이콘읽는 시간1분 32초

-32도가 넘는 때이른 폭염에 쪽방촌 거주민들 고통 심각
-창문 없는 쪽방의 경우 환기가 잘 안돼 곰팡이 슬기도
-쪽방 거주민 "달리 방법이 있나...그냥 버틸 수밖에"


[르포]폭염에 신음하는 쪽방촌 독거노인들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한 거주민이 더위에 못이겨 문을 열어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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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문제원 기자] "우린 더워도 그냥 참아요. 버티는 것 말곤 달리 방법이 없으니까…."


때이른 폭염으로 전국이 찜통으로 변해버린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골목길을 지나던 최모(여·75)씨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이렇게 말했다. 최씨는 오래전 남편과 사별한 후 아들과 둘이 산다고 했다.

지은 지 30년은 족히 넘은 최씨의 집은 그동안의 세월이 느껴지듯 벽면에 곰팡이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최씨는 "집 안이 덥지만 근처에 있는 공원에는 남자들 밖에 없어 잘 가지 않는다"며 "쪽방 거주민 중에 몸이 안 좋은 사람이 많은데 그분들에 비하면 난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


최씨가 살고 있는 3층 건물에는 층마다 쪽방 4~5개가 붙어있었다. 대부분 입구 말고는 창문이 없어 환기가 잘 되지 않았다. 복도에 열린 문 사이로는 1평 남짓한 방에 누워 연신 부채질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특히 지하 쪽방은 상황이 더욱 열악해 내려가는 계단부터 습한 더위가 물씬 느껴졌다.


건물 앞 그늘에서 더위를 피하던 60대 A씨는 "아직까지 밤에는 시원해서 괜찮지만 지금처럼 뜨거운 낮에는 집안에 있기가 힘들다"며 "차라리 비라도 내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공원이나 동자희망나눔센터 등 주변 무더위쉼터를 찾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사람이 북적이는 곳은 싫어 잘 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르포]폭염에 신음하는 쪽방촌 독거노인들 쪽방촌의 한 건물 2층에 여러개의 방이 붙어있다.


서울역쪽방상담소에 따르면 갈월동과 동자동 근처 쪽방촌에는 70여개 건물에 1200여명이 살고 있다. 최씨처럼 가족과 함께 사는 경우도 있지만 95% 이상은 혼자 산다. 주로 50~60대가 많고 열악한 환경 탓에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이 대부분이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심리적으로 위축돼 타인과 교류를 잘 맺지 못하는 어르신들은 무더운 날씨에도 집에서 버티는 경우가 많았다.


이날 서울은 낮 최고기온 32도에 폭염주의보가 내리는 등 나흘 째 찜통 더위가 계속되고 있었지만 80대 B씨는 하루종일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거동이 불편한 그의 집 문 앞에는 전동휠체어가 놓여 있었다. 1평 남짓한 쪽방은 각종 생활용품으로 가득 차 성인 두 사람이 들어가기도 힘들었다. 창문이 없어 출입구를 열어 놓지 않으면 사우나처럼 뜨거운 공기로 가득 찼다. B씨는 "몸이 안 좋아서 더워도 양말을 신고 있어야 한다"며 "방송사에서도 오고 인터뷰도 했지만 우리 생활은 달라지는 게 하나도 없다"고 토로했다.


햇빛이 가장 뜨거웠던 오후 1~2시 동자동 쪽방촌 일대는 비교적 고요했다. 쪽방촌 가운데 있는 공원에는 선교를 나온 종교인들이 부르는 찬송가가 울려퍼졌지만 쪽방 골목길에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공원에서 만난 어르신은 "저녁에 해가 져야 사람들이 많이들 나온다"고 귀뜸했다.


[르포]폭염에 신음하는 쪽방촌 독거노인들


그나마 방에 선풍기나 창문이 있으면 사정이 조금 나은 편이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5년 째 동자동 고시원에 살고 있다는 김모(60)씨는 "창문이 있는 방도 있지만 좀 더 비싸다"며 "환기가 안 돼 곰팡이가 슬어도 이젠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날씨에는 방에 있기도 힘들어 건물 앞 의자에서 한참 앉아 있거나 종로 쪽 공원으로 가기도 한다"고 했다.


일부 어르신은 골목에 돗자리를 펴고 누워있기도 했다. 50대 C씨는 더위에 지쳐 윗옷을 벗고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그는 "평소보다 더위가 빨리 왔다고 하지만 우리는 매 여름이면 똑같이 너무 힘들다"며 "에어콘이 있나 선풍기가 있나, 그냥 여름이 지나갈 때까지 잘 버티는 수밖에 없다"고 말끝을 흐렸다. 그는 호수로 등목을 한 뒤에야 방으로 들어갔다.


근처에 서울역쪽방상담소나 무더위쉼터가 있어도 쪽방거주민들을 모두 관리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쪽방촌 거주민도 많을 뿐더러 열악한 시설을 단기간에 개선하기는 힘든 탓이다. 서울역쪽방상담소 관계자는 "폭염에 대비해 건강이 안 좋은 쪽방거주민은 매일 방문 관리를 한다"며 "창문을 만들거나 선풍기를 지원하는 사업도 수시로 하고 있다"고 했다.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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