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국민이) 위대한 결정을 했습니다. 정말 환상적입니다”
미국 공화당의 사실상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투표 결과를 두고 언급한 첫 마디다. 브렉시트 다음날인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스코틀랜드에 위치한 자신의 골프장 홍보행사에서다.
트럼프는 아마도 영국 유권자 51.9%의 지지로 브렉시트가 결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쾌재를 불렀을 것 같다. 유럽에서 불어올 브렉시트 열기가 자신의 대선 슬로건인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에 큰 활기를 불어넣어 줄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국 정치권의 브렉시트 운동과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신고립주의와 반 이민 정서라는 자양분을 공유하고 있다. 브렉시트에 들떴던 트럼프는 지난달 28일 자신의 미국 우선주의를 집대성한 보호 무역정책까지 발표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트럼프의 계산은 다소 어긋나고 있다. 영국의 국민투표 이후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의 여론은 브렉시트에 대한 기대와 격려보다는 우려와 비판이 압도적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 신고립주의를 주장했던 지도자들에 대한 비판과 질책도 거세지고 있다. 영국 언론과 외신들은 연일 나이젤 패라지 영국독립당(UKIP) 대표와 보수당의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 마이클 고브 법무장관의 브렉시트 이후 말바꾸기를 조롱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트럼프의 보호주의 무역 공약들에 대해 ’외국인 혐오증’일 뿐이라고 일축해버렸다.
물론 자국의 일자리 감소와 중산층 붕괴, 부진한 경제 회복을 이민자에 대한 혐오나 자유무역주의에 대한 반감으로 몰아가려는 태도는 지극히 위험하다. 비판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저 조롱과 비판에 머물러선 곤란하다. 숱한 구설수 속에서도 트럼프는 여전히 미국 유권자 40% 안팎의 지지를 받고 있다. 브렉시트 역시 영국민 과반수의 민의가 반영된 결과다. 단순한 해프닝이나 역사적 실수로 치부할 순 없다. 그 밑에 흐르고 있는 도저한 저류를 놓쳐선 안된다는 의미다.
최근에 만난 월 가의 한 애널리스트는 “트럼프는 경제가 잘못 되고 있는 것을 이민자들과 시장의 세계화 탓으로 돌리고 있다”고 혀를 찼다. 필자 역시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그런데요..그 분석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라는 말이 반전이었다.트럼프의 주장이 과장되고 선동에 의존하고 있지만 미국사회가 큰 문제와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는 얘기다.
자유무역주의와 세계화는 수십년째 글로벌 경제의 화두이자 절대선처럼 자리를 잡아왔다.그런데 그 과정에서 드러난 부작용과 모순도 켜켜히 쌓이고 있다. 자유무역과 세계화 기조 속에 저임금 근로자와 실업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가 양산되고 이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이미 위험수위에 다다른 상태다.
세계화와 자유무역을 부르짖었던 각국의 정부와 경제 주체들은 이 문제를 적시에 해결하지 못하고 방치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브렉시트는 ‘묻지마식’ 통합 지상주의에 대한 진지한 성찰도 요구한다. 브렉시트 투표 직후 알렉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EU는 민주주의 결핍과 사회적 통합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면서 “브렉시트가 유럽을 깨우는 경종으로 작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새겨 들을 지적이다.
자유무역주의와 세계화를 지지하는 진영이 그 부작용과 상처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치유의 대안 제시에 실패한다면 제2, 제 3의 트럼프 주의와 브렉시트의 출현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 현상과 브렉시트가 던지고 있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오히려 세계화의 부작용이 더 곪아터지기 이전에 모습을 드러낸 경고등일 수 있다. 그들에 돌을 던지기 전에 진지한 성찰과 대안을 한번 더 고민해야할 때인 것 같다.
뉴욕=김근철 특파원 kckim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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