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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街人)르포]인사동길 중년여성 샹송가수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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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애리가 거리서 만난 사람 - 한복희씨, 작년 겨울부터 버스킹 나섰는데

[가인(街人)르포]인사동길 중년여성 샹송가수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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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街人)르포]인사동길 중년여성 샹송가수의 비밀 서울 인사동에서 버스킹 공연 중인 한복희씨 모습. 사진=유투브 영상캡처

[아시아경제 부애리 기자]버스커(길거리 음악가)들은 어스름한 저녁, 가로등 불빛을 조명삼아 공연을 하고 삶을 꾸려간다. 그들에겐 거리가 화려한 공연장보다 소중한 무대이며 어디서 불어올 지 모르는 자연바람은 황홀한 무대장식이다. 누군가는 길거리에서 돈벌이 한다며 천대할 지 모르지만 음악에 대한 낭만과 철학은 결코 천하지 않다.


서울 인사동,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때면 캐리어를 끌고 나와 눈을 꼭 감은 채 영국 팝스타 아델(Adele)의 'Someone like you'를 시작으로 프랑스 가수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의 샹송 '빠담 빠담'까지 부르며 사람들의 마음을 힐링시키는 한 여인이 있다. 작은 체구에서 폭발하는 엄청난 성량이 귀를 사로잡는 그는 버스커 한복희(57)씨다.

한씨는 버스킹 이야기를 시작하자, 연신 황홀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지금 내 삶이 너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희끗희끗 보이는 은빛 머리카락이 그녀의 눈빛과 함께 빛나고 있었다.


한씨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중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늘 가방 속에 세광 애창700곡집 책을 가지고 다녔다"며 "가정환경이 어렵고 부모님도 돈벌러 나가시고하면 우울할 때가 있었다. 그런데 혼자서 몇 곡 시원하게 부르고나면 위로가 되고 힐링이 됐다"고 설명했다.


[가인(街人)르포]인사동길 중년여성 샹송가수의 비밀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버스킹을 하고 있는 한복희씨. 사진=KIM JAE YOL


노래는 언제나 나보다 먼저 말하고
언제나 내 목소리를 뒤덮어 버리거든 빠담 빠담 빠담 -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 'Padam Padam' 中

한씨는 30년 동안 섬유공예가로 일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복에 그림 그리는 일로 생업을 이어간 그는 "화학물감 때문에 건강이 정말 안좋아졌다. 10년 정도 병치레를 했는데, 음악이 큰 위로가 됐다. 유튜브 음악 갤러리로 버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아픈 기억을 떠올린 듯 애잔한 표정을 지었다. 이후 그림 그리는 일과 음악공부를 병행하다 작년 9월부터 본격적으로 음악에 집중했다. 버스킹을 처음 시작한 것도 작년 겨울이다. 한씨는 "'음악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실력이 될까' 궁금했다. 나를 평가하기 위해 길거리에서 노래부르기 시작했다"며 처음 버스킹을 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이어 "프랑스 사람들에게 샹송 실력을 평가받고 싶어서 일단 무작정 서래마을 몽마르뜨공원에 갔다. 처음엔 돈통을 놓을 줄도 몰랐다. 관객들이 앰프에 5만원짜리를 꼽아놓고 간 적도 있다"고 회상했다. 아울러 "관객 중에 내 노래를 듣고 큰 위로를 받았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 경기도 김포·이천 등지에 버스킹을 보러오기 위해 일부러 오는 남성분도 있다. 이런 관객들은 내 자신을 마치 능력자인 것처럼 느끼게 해줘서 행복하다"고 전했다. 마치 영화처럼 관객들과 호흡하기도 한다. 인사동에서는 여학생 3명이 한씨의 노래에 맞춰 멋진 춤을 췄다. 이들의 공연을 찍어올린 유투버는 "내 인생 최고의 공연이었다"라고 극찬했다.


[가인(街人)르포]인사동길 중년여성 샹송가수의 비밀 한복희씨 노래에 맞춰 한 여성 관객이 춤을 추자, 다른 관객들이 환호를 보냈다. 사진 = 유튜브

한씨는 "이 여학생들은 정말 인상깊었다. 이들 외에도 내 노래에 맞춰 춤춘 관객이 꽤 된다. 마로니에 공원에서 공연할 때 내 노래에 맞춰 팝핀댄스를 춘 청년이 있었다. 정말 환상적인 퍼포먼스였다. 탱고를 추는 남녀 관객도 있었다"며 공연 당시의 흥분을 드러냈다. 넉넉하진 않지만 혼자 생활할 정도의 수입도 생겼다. 강원도에서 미술작업을 하다가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는 겨울인데 생활비가 없을까봐 정말 걱정했다는 그는 "인생은 정말 알 수 없는 것 같다. 불규칙적이긴해도 노래로 돈을 벌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물론 거리에서의 삶이 항상 황홀한 것만은 아니다. 때론 각종 갈등에 부딪치기도 한다. 항의를 받고 자리를 옮기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다. 한씨는 "요즘 경기도 어렵고 상인들이 항의하는 것을 이해한다. 나는 자릿세도 안내고 공연을 하는 것이니까 그런 일이 생기면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긴다. 관객들이 짐 옮기는 것도 함께 도와준다"며 미소를 지었다. 버스킹의 황금기인 여름이 되면 자리전쟁도 벌인다. 선점해서 노래를 시작하는 버스커가 그 자리 주인이다. 한씨는 "한번은 노래를 하러 인사동에 갔는데, 책을 보면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외국청년이 있었다. 내가 노래를 하려는데 자신이 자리를 맡고 있다고 주장했다. 공연도 하지 않으면서 자리를 맡고 있는 것은 예의에 맞지 않는다"며 "나중에 알고보니 그 청년은 유명한 버스커였는데 자신이 서 있는 것만으로 표시가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돈을 훔쳐가는 이도 있었다. 원래 오픈된 돈통을 놓고 공연을 했는데 어느날 노숙자가 지폐를 한웅큼 훔쳐갔다는 것이다. 노숙자들의 삶이 힘든 건 이해한다면서고 굉장히 충격적인 경험이라고 털어놨다. 한씨는 음악에 대한 진정성을 강조했다. 그는 "실력도 중요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작은 연습할 공간을 마련하는 게 목표다. 연습할 곳이 없다보니까 공연할 때 컨디션 안좋다고 변명하는 일도 생긴다"며 "한 소절을 부르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밀도감 있는 퍼포먼스를 하고 싶다"는 희망을 전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거리에서 노래 할수록 더욱 스스로에게 엄격해져야 한다. 거리에서 머문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언제나 천대할 준비가 되어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만의 룰을 가지고 존중받을 수 있게 행동해야 한다. 우아함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동영상=한복희씨의 노래에 맞춰 춤추는 관객들 모습






부애리 기자 aeri34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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