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12일(현지시간) 중국을 방문한다. 메르켈 임기 중 벌써 아홉 번째 방중이다. 메르켈 총리가 2005년 11월 취임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거의 매년 한 차례씩 중국을 방문한 셈이다. 그만큼 중국을 신경 쓰고 있다는 의미다.
이번 메르켈 총리의 방중이 무엇보다 주목을 받는 이유는 중국의 시장경제지위 부여 문제가 올해 하반기 세계 경제의 핵심 이슈로 부각될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15년간 '비시장경제지위'를 감수키로 했다. 그 15년의 시한이 오는 12월11일 만료된다. 최근 중국 철강·알루미늄 등의 과잉생산과 저가 공세 문제가 세계경제의 논쟁거리로 떠오른 미묘한 시점에서 중국의 비시장경제지위 만료 시기가 다가온 것이다.
중국산 제품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국과 유럽은 중국의 시장경제지위 인정을 껄끄러워 하고 있다. 시장경제지위를 인정해 주면 중국산 제품의 과잉생산과 저가 공세에 대해 문제를 삼을 수 있는 여지가 줄기 때문이다. 이미 유럽연합(EU) 의회는 지난달 중국의 저가 철강 수출을 문제 삼으며 중국의 시장경제지위 부여에 반대하는 결의안을 채택한 상태다.
상황이 이런만큼 중국은 이번 메르켈 총리의 방중 기간에 자국의 시장경제지위 인정을 위해 메르켈 총리에 도움을 적극 요청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도 중국의 구애에 호응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올해 들어 중국의 독일 기업 인수 시도가 크게 늘면서 최근 독일 내에서 중국의 기술 유출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메르켈 총리의 방중과 관련해 독일의 산업용 로봇업체 쿠카와 관련해 메르켈 총리가 중국의 야욕과 대치할 수 있다고 전했다.
쿠카는 중국 가전업체 메이디 그룹이 최근 인수를 시도하면서 주목받은 업체다. 독일 내에서는 디지털 산업사회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쿠카를 중국에 넘겨줘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독일의 지그마르 가브리엘 경제장관은 최근 쿠카가 중국에 넘어가지 않도록 유럽 컨소시엄을 구성해 메이디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브리엘 장관은 지난 8일 중국을 겨냥해 경제를 완전히 개방하지 않은 국가들에 대한 투자 제한을 강화하는 법안도 제안했다.
이런 상황 때문에 블룸버그는 이미 메르켈 총리의 방중 전에 갈등이 형성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쿠카를 지켜야 한다는 압력이 커지는 상황에서 이번 메르켈의 방중 분위기는 이전과 다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해 중국 방문 당시, 독일은 원칙적으로 중국에 시장경제제지위 부여를 찬성하지만, 시장 개방확대 등 과제가 남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메르켈 총리는 이번에 기업 경영진 약 20명과 함께 중국을 방문한다. 방중 기간 중 메르켈 총리는 제4차 '중-독 정부 간 협상'에 참가하며 난징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도 받을 예정이다.
메르켈 총리는 또 동북지역 선양을 방문, 독일 구조개혁의 경험을 전파할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7월 선양을 방문해 동북 지역이 철강 과잉생산 문제를 장비 제조 중심의 새로운 성장거점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문한 바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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