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부 장관까지 재촉하자 작심발언
"미래부 심사, 공정위 결론에 구속되는 것 아냐"
앞서 더 오래 들여다본 사례도.."기한 내 발표"
[아시아경제 오종탁 기자] 공정거래위원회를 향한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 건을 너무 오래 심사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공정위원장이 직접 "관련 내용을 검토하는 데 시간이 상당히 걸린다. 앞서 더 오래 진행된 심사도 있었다"고 해명했다. 비판론이 쏟아지는 가운데 최근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까지 공정위에 조속한 심사를 촉구하자 진화에 나선 것이다.
정재찬 공정위원장은 지난 26일 충남 태안 인근에서 공정위 간부-출입기자단 워크숍을 개최해 "최양희 장관이 국무회의장에서 나에게 '(심사가) 잘 돼 가느냐'고 물어보긴 했다"며 "자료 보정 기간을 제외하면 심사 기한을 넘긴 게 아니다"라고 밝혔다.
앞서 최 장관은 미래부 출입기자들과 만나 "나도 궁금해서 정 위원장에게 몇 번이나 '너무 느리지 않느냐'고 의문을 제기한 적이 있는데, (정 위원장으로부터) '생각보다 심사 과정이 복잡해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다'는 답을 들었다"고 전했다.
'너무 느린 데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잘 돼 가느냐고 물어왔을 뿐' 최 장관과 정 위원장의 표현이 확연히 다르다. 해당 업계 기업들에 이어 관계부처 두 수장도 따로, 다른 목적으로 언론플레이를 펼치는 상황이 온 것이다.
전기통신사업법상 기간통신사업자의 합병에서 경쟁제한성 부분과 관련해 미래부는 공정위와 협의를 거쳐야 한다. 현재 미래부 또한 심사 결과 발표를 코앞에 두고 공정위 결론만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다. 최 장관은 "공정위가 결정하면 이후 (심사) 진행에 차질이 없도록 내부적인 준비를 충실히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정 위원장은 "미래부 심사가 공정위 결론에 구속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만약 공정위가 '경쟁제한성을 해소해야 한다'고 시정 조치해도 미래부 입장에선 (심사에) 아무 상관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쟁제한성 판단은 이번 M&A 심사의 일부분"이라며 "(미래부가) 방송의 공익성, 공공성, 방송·통신 산업 정책적 측면 등 여타 부분은 지금도 얼마든지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래부는 더이상 공정위를 흔들지 말고 본연의 업무에 충실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정 위원장은 이어 "법적으로 공정위가 기업결합을 승인하거나 불허할 수 없고 시정 조치를 내릴 뿐"이라며 "시정 조치의 내용과 수준에 따라 외부에서는 불허 또는 조건부 승인으로 이해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기업결합 신고서가 공정위에 제출된 지 170일(26일 기준 178일)이 넘어 최장 심사 기록이라는 집계에 대해선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전까지 공정위 다른 관계자들이 비슷한 의견을 밝힌 적은 있었지만 정 위원장 입에서 "심사 기한을 초과한 게 아니다"라는 직접적인 해명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SK텔레콤은 작년 12월1일 CJ헬로비전을 인수하겠다며 공정위에 승인을 요청했다. 현행법상 심사 기한은 최대 120일로 정해져 있다. 정 위원장은 "자료 보정 기간을 제외하면 심사 기한 내에 있다는 내부 보고를 받았다"며 "120일을 초과한 것은 전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다만 공정위는 지금까지 몇 번이나 자료 보정을 요청했고, 며칠이나 제외됐는지는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 위원장은 "이번 건은 방송과 통신이 융합된 첫 사례일 뿐 아니라 방송시장과 통신시장 경쟁상황 평가 보고서 내용이 방대해 검토에 상당히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방송과 통신 분야 기업결합 심사에서 이번 건보다 더 오래 걸린 사례도 많았다고 정 위원장은 설명했다. 공정위 역사상 가장 긴 심사를 거친 사례는 CMB의 지역케이블 인수 건으로 약 2년6개월을 기록했다. 현대HCN의 지역 케이블방송사 인수, CJ케이블넷의 지역 케이블방송사 인수 등 심사에 1년 이상을 할애한 경우도 있었다.
정 위원장은 "자료 보정 기간을 제외하면 심사 기간에 여유가 있다. 우리 사무처도 '가급적 빨리 결론을 내겠다'고 했다"면서 "언제라고 못박을 순 없지만 120일이라는 심사 기한 내에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CJ헬로비전은 약 382만명의 가입자를 둔 케이블TV 업계 점유율 1위다. SK텔레콤 계열 SK브로드밴드는 가입자 335만명의 인터넷(IP)TV 업계 2위 기업이다. 두 회사가 합병하면 가입자 717만명에 달하는 거대 방송기업이 된다.
KT와 LG유플러스 등 경쟁 이동통신과 지상파 업계는 두 회사의 합병에 SK텔레콤의 이동통신 분야 경쟁력까지 더해지면 방송시장 지배력이 SK계열로 집중된다는 점 등을 이유로 합병을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반면 SK텔레콤 측은 이동통신시장 점유율 하락세 등을 들어 두 회사 합병으로 인해 SK계열의 지배력 전이 등의 문제가 초래될 가능성이 적고 오히려 시장경쟁 활성화가 가능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태안(충남)=오종탁 기자 ta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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