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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임을 위한 행진곡' 보훈처의 자기 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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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임을 위한 행진곡' 보훈처의 자기 부정 김동선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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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옷 차림의 포박된 청년. 줄지어 끌려가는 시민들. 그들을 발로 차고 개머리판으로 가격하는 군인들. 길바닥에 엎드린 사람들. 그들의 머리를 겨누는 총구. 피를 흘린 채 길 한편에 쓰러진 중년 남성. 젖가슴이 도려진 여자. 양다리를 하나씩 잡고 시체를 끌고 가는 두 군인. 가지런히 정렬된 시신들. 태극기로 감싼 관을 잡고 통곡하는 여인들.


외국기자가 찍었다는 1980년 5월 광주의 모습이다. 중학교 2학년쯤으로 기억하는데 동네 성당에서 처음 그 영상을 보았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도 그 잔상만은 아직 또렷하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그들은 그렇게 스러져갔다.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던 뜨거운 맹세는 군화발에 무참히 뭉개졌다. 무고한 시민들의 피가 오늘날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자양분이 됐음을 그 때는 알지 못했다.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시민들을 무력으로 제압한 군대와 자국민에게 총구를 겨냥한 군인은 그렇게 스스로 민주주의를 짓밟고 독재의 길을 만들었다.


5ㆍ18민주화운동기념일을 앞두고 올해도 '임을 위한 행진곡'의 기념곡 지정과 제창 여부를 두고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 13일 청와대에서 20대 국회 새 원내 사령탑들의 건의를 받은 박근혜 대통령은 '국론 분열이 생기지 않는 좋은 방안을 찾아보라고 지시하겠다'고 답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보훈처는 16일 기존대로 합창만 하기로 결정했다. '협치'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는 다시 '국론 분열'의 쟁점이 됐다.

알다시피 임을 위한 행진곡은 80년 광주를 상징하는 곡이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시를 원작으로 소설가 황석영이 노랫말을 지었고 당시 전남대 학생이던 김종률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이 1982년 작곡했다. 80년 5월 광주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하다 숨진 윤상원씨의 영혼 결혼식을 주제로 한 노래극에서 마지막 부분에 삽입된 곡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97년 정부가 5ㆍ18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한 후 정부 주관 첫 기념식이 열린 2003년부터 2008년까지 기념식 본행사에서 기념곡으로 제창됐다. 그러다 이명박 전 대통령 집권 2년차인 2009년부터 본행사에서 제외되고 식전행사에 합창단이 '제창'이 아닌 '합창' 형태로 불렸다. 이에 항의하는 뜻으로 일부 5ㆍ18 단체 회원들은 본행사 참석을 거부하기도 했다.


이 노래의 기념곡 지정과 제창을 거부하는 측에서는 '공식 기념행사에 다양한 계층이 참석하는데 국론 통합에 거슬린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0년대 이후 운동권과 노동계의 이른바 '투쟁가'로 불렸으니 국민을 선동하고 국론을 분열시킨다는 논리다. 또 일부에서는 노래 속 '임'이 북한 김일성을 가리킨다거나 가사 중 '새 날'이 반민주주의적 체제 전복을 일컫는다는 황당한 주장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 시민들 대다수는 이 문제가 왜 논란이 되는지, 공연한 분란과 사회적 낭비를 일으키는지 잘 이해하지 못한다. 지난주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가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도 임을 위한 행진곡의 기념곡 지정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53.5%로 반대(29.4%)를 크게 앞섰다. 찬성 의견은 3년전 같은 조사 때보다 10%포인트 높아진 것이라고 한다.


보훈처의 논리도 궁색하다. 2008년까지 행사를 주관하면서 보훈처는 보도자료에서 '기념식은 헌화ㆍ분향에 이어 경과보고, 기념공연, 기념사에 이어 기념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등의 순서로 진행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떤 이유로 이 곡이 제창에서 빠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보훈처 스스로 자기 부정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온전히 5월 광주를 위한 노래다. 그러나 보훈처의 결정으로 이번에도 앞서서 나간 이들에게 바치는 노래에서 산 자의 부채의식은 제대로 담기지 못하게 됐다.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알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편협한 시각에 논란을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은 씁쓸하다.






김동선 사회부장 matthe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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