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삼성중공업 채권은행이 삼성중공업에 자구계획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경제계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미 자체적으로 구조조정에 나섰고 비용 절감 노력을 하고 있는 상황에 추가로 자구안을 내놓으라고 압박하는 것은 부실경영과 부실감독의 책임을 민간기업에만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삼성중공업의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이 삼성중공업에 자구 계획을 요구한 것은 금융당국이 현대중공업과 마찬가지로 삼성중공업에 대해서도 채권단이 자구계획을 제출받아 관리하라고 발표한 데 따른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26일 구조조정 협의체 회의 후 부진에 빠진 조선 대형 3사가 강력한 자구계획을 세우고, 채권단이 자구계획 집행상황을 관리하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중공업으로서는 그동안 자체적으로도 구조조정을 계속해 온 상황에서 추가로 자구안을 요구받으면서 상당한 부담을 느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인력 감축과 비핵심 자산 매각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전체 임원의 30%(30명)를 줄였고 상시 희망퇴직을 통해 1000명가량의 직원이 회사를 떠났다. 2014년 약 500명에 이어 2년 동안 총 1500여명의 인력 감축이 이뤄졌다. 전체 직원(1만3000명)의 10% 이상이 회사를 떠난 셈이다. 이와 함께 사외기숙사(493억원), 수원사업장(310억원), 당진공장(205억원) 등 비핵심 자산 매각을 통해 총 1000억원의 현금 유동성도 확보했다. 이처럼 자체적으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상황에 이번 채권단의 자구계획 요구는 다소 무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 모두 수많은 비용 절감 노력을 하며 선제적으로 구조조정을 해 나가고 있다"며 "고통스러운 현재 상황에서 정부가 자구계획을 또 내라고 하는 것은 여론몰이식 압박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때문에 정부가 구조조정 시기를 놓쳐 화를 키워 놓고 그 책임을 민간기업에만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8월 부실 덩어리 성동조선해양의 경영을 삼성중공업에 떠넘긴 것도 사실상 반강제적이었다. 지난해 2분기 사상 최대의 적자를 내는 등 '제 코가 석 자'인 삼성중공업이 성동조선의 경영정상화에 나선다는 것에 대한 비판 여론이 많았다. 이후 삼성중공업은 지금까지 수주 실적이 전무하고, 성동조선 또한 올 들어 수주가 전혀 없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들이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채 수익성 없는 대형 수주에 대출 또는 보증에 나섰다가 막대한 부실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죽했으면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조차 "국책은행은 부실기업의 워크아웃(재무구조개선작업) 개시 시점을 지체시키고 지원을 확대했다"며 "자산 매각과 인력 구조조정에도 소극적이었다"고 질책성 보고서를 발표했다. 산업은행은 최근 비금융 자회사의 정리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란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재계의 관계자는 "국책은행이 조선ㆍ해운업종에만 반성과 구조조정을 강제할 게 아니라 이참에 본인들도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통해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형광 기자 kohk010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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