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0만 소비자 개인정보 팔아 돈 챙긴 홈플러스 무죄
-법에 개인정보보호법 고지 의무만 있고 구체적인 크기·문구 규정 없어
-금융·의료 등 다른 업계는 불리한 사항 숨기기 철퇴 …구체적 규정 필요
[아시아경제 김재연 기자] 흔히 경품행사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시는지요? 저는 화려한 부스와 재미난 사회자의 입담, 정말 갖고 싶은 1등 상품들이 떠오릅니다. 혹시 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설레임으로 응모도 자주했습니다. 물론 흔한 5등 상품도 탄 적은 없네요.
그럼 경품행사를 업체들은 왜 할까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고객들을 많이 끌기 위해서일 겁니다. 자기들이 돈을 벌기 위해 하는 행사니 자기들이 비용을 내는 게 상식이겠죠. 응모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업체에게 물질적인 이득을 준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상식 밖의 일이 일어났습니다. 홈플러스가 경품행사에 참여한 고객정보 2400만건을 7개 보험회사에 팔아 232억원을 남긴 것이 드러난 것입니다. 경품행사를 한다면서 자기들이 고객정보라는 '경품'을 받은 셈이죠.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나고 검찰이 기소하자 홈플러스는 공식 사과를 했습니다. 그런데 검찰 기소 부분 가운데 하나는 문제 삼았어요. 홈플러스는 '업계에서 유사하게 진행하는 마케팅 활동을 범죄 행위로 보는 부분에 대해선 재판과정을 통해 성실히 소명하겠다'고 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다들 하는 마케팅이었는데 왜 우리만 문제삼느냐는 소리였겠죠.
홈플러스는 특히 고객들에게 정보를 활용 수 있다는 걸 고지를 했다고 강조했어요. 흔히 인터넷에서 많이 보셨을 겁니다. 보험사 마케팅에 활용될 수 있다는 걸 동의해야 준다는 소액 쿠폰들. 그것과 다를 바 없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럼 실제 고지를 했을까요? 고지는 했습니다. 1㎜크기로 보험 마케팅에 활용이 된다는 문구가 들어 있었거든요. 법원의 판단도 같았습니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기소된 홈플러스에게 무죄를 선고한 겁니다. 시민단체는 1mm크기의 항의서한을 1심 재판부에게 보냈습니다.
이해할 수 없어서 개인정보보호법학회 회장이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인 김민호 교수님께 재판에 대해 여쭤 봤습니다. 교수님은 "사법부는 열심히 보면 인식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고 시민단체는 읽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법리적으로는 판단하기 쉽지 않다"고 했습니다. 교수님은 개인정보보호법에 고지 의무만 있고 특별한 규정이 없어서 생기는 문제라며 법을 고쳐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현재 개인정보보호법은 개인정보 활용을 고지하게 돼 있습니다. 그러나 얼마 크기로 해야 한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1㎜가 아니라 0.5㎜로 해도 상관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업체 입장에서는 응모 인원을 최대한 늘려야 정보를 많이 팔 수 있으니 나쁜 부분은 작게 쓰겠죠.
비슷한 사례가 제약계에도 있었습니다. 제약사들이 효능은 크게 쓰면서 부작용은 거의 보이지도 않게 적어 놓았거든요. 그러자 보건당국이 칼을 빼들었습니다. 2009년 규칙을 따르도록 강제한 겁니다. 유효성분·사용기한은 7포인트 이상으로 쓰게 했습니다. 경고 항은 굵은 선으로 표시하되 배경을 노란색으로 하게 했지요.
TV 보험광고 성우의 '속사포 설명'도 금융위원회가 보험광고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사라진 겁니다. 계약자에게 불리한 내용을 본방송과 같은 속도로 이야기하게 했거든요. 다 불리한 것은 숨기는 업체들의 꼼수를 막고 소비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들이죠.
결국 제약업계처럼 구체적으로 법을 통해 규제를 해야 1㎜ 고지 꼼수도 사라질 듯합니다. 문제의 문구가 법이 정한 가이드라인에 맞지 않나만 판단하면 되니 판결을 둘러싼 논란도 없어지겠지요. 아쉬운 건 애초에 업체들이 상도의를 지켰다면 하는 점입니다.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법이 자꾸 복잡해지는 건 상도덕이 그만큼 흔들려서 아닐까요?
김재연 기자 ukebid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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