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대섭 기자] "키트와 에어울프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지금 생각해 보면 매우 유치한 물음이지만 어릴 적 가장 궁금했던 것 중 하나다. 당시 나는 키트가 이길 것이라고 믿었다. 운전자와 말을 하면서 스스로 주행도 하고 첨단무기를 장착해 악당들을 물리치는 모습이 환상적이었다.
키트는 1980년대 미국 NBC에서 방영된 드라마인 '나이트 라이더(Knight Rider)'에 나오는 인공지능 자동차다. 국내에서는 '전격 Z작전'이라는 제목의 드라마로 선보여 큰 인기를 끌었다.
키트가 내 기억 속에 다시 떠오른 것은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앞으로 나올 자율주행자동차와 관련한 법령 초안을 세계 최초로 내놓았기 때문이다. 키트와 같은 완전한 인공지능차를 타고 도로를 주행하는 것이 꿈이 아닌 현실로 한 발 더 다가왔다는 얘기다.
현재까지 자율주행차 상용화 계획을 구체화한 곳은 없지만 전 세계 10여개 기업들이 2020년 제품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율주행차란 운전자의 조작 없이 목표지점까지 스스로 주행환경을 인식해 운행하는 최첨단 기술을 갖추고 있다. 위성항법ㆍ센서 등으로 위치를 측정하고 주행환경을 인식해 연산장치로 가감속ㆍ차선변경 등 자율주행을 제어하는 원리다.
자율주행차의 최고 수준인 레벨4의 경우 완전 자율주행이 가능하다. 자율주행차의 시대는 거스를 수 없는 자동차산업의 흐름이다. 우리 정부도 지난 5월 '자율주행차 상용화 지원 방안'을 발표하고 2020년까지 자동차 스스로 부분적인 자율주행이 가능한 레벨3 수준의 자율주행차 상용화를 추진 중이다.
정부는 이를 통한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2025년 고속도로 사망률 50% 감소와 교통사고비용 약 5000억원 절감, 하루 평균 50분ㆍ연간 12일의 여유시간 창출, 산업 융복합에 따른 부가가치 제고와 일자리 창출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바람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그동안 정부가 추진했던 전기자동차 상용화를 위한 각종 정책들의 현재 모습을 보면 더 그런 마음이 생긴다.
정부는 2008년부터 전기자동차 시범 운행방안 연구와 안전기준ㆍ법령 보완 등을 통해 상용화 기반을 추진해왔다. 2012년에는 '전기자동차 도로주행 모니터링 사업' 추진 성과도 발표했다. 실제 도로 여건에서 전기자동차를 운행해 보면서 그 성능과 안전성을 검증하고 이미 수립된 전기자동차 안전기준의 적합 여부를 확인한 사업으로 2010년부터 3년 동안 약 30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하지만 아직도 충전소 인프라 미비와 민간 참여 부족 등 국내 전기차시장은 걸음마 단계라고 평가받고 있다. 당초 전기자동차 100만대 보급 목표도 2020년 20만대로 대폭 수정됐다. 환경부 등에 따르면 올해까지 전기자동차 보급 대수는 6000대 수준에 불과하다. 정부의 의욕과 달리 성과가 초라해 보이는 이유다.
전기자동차는 물론 자율주행차 상용화 부문은 세계 각국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분야다. 이러한 경쟁에서 뒤떨어질 경우 국내 자동차산업은 물론 관련 첨단산업에도 심각한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때문에 우리나라가 미래 자동차시장을 선도하려면 선제적인 제도 정비와 인프라 확충 등 범정부적인 지원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정책 추진 과정에서 자동차 회사들과 소비자들이 원하는 바를 수시로 파악하고 반영하면서 보완해나갈 필요가 있다.
전기자동차 상용화 추진 과정에서 겪었던 문제들을 거울삼아 자율주행차 정책만큼은 계획대로 차질없이 진행되길 바란다. 어릴 적 꿈꿨던 키트와의 만남이 하루빨리 이뤄지길 바랄 뿐이다. 키트와 같은 인공지능차와 대화를 나누며 전국 곳곳을 달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김대섭 기자 joas1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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