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난 모르겠고…."
젊은 아파트 입주민이 뭘 할라치면 완고하게 생긴 경비아저씨가 그건 안 된다고 제지한다. 젊은 입주민이 논리적으로 설명해도 막무가내로 "그건 난 모르겠고"라며 고집을 굽히지 않는다. 하지만 이 고집불통 경비아저씨는 자신의 지인에게는 한없이 너그럽다. 젊은 입주민에겐 안 되는 일인데 지인에게는 무사통과다.
KBS 간판 개그 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인 '고집불통'의 스토리 구조다. 주인공이 아파트 공터에서 배드민턴을 치는 것은 안 되고, 자신의 지인이 야구를 하는 것은 괜찮다는 식이다.
갑을 논란의 최첨단에 서 있을 만큼 '을'의 서러움을 받고 있는 경비원이 입주민에게 무턱대고 안 된다고 하는 설정은 분명 비현실적이지만 이 경비원의 유행어인 "그건 난 모르겠고"란 말은 언제부터인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실제 일상생활에서 논쟁을 하다 보면 한쪽이 승복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논리적으로 달리면 승복해야 하는데 상대방의 논리를 아예 무시한다.
상대방의 논리를 인정하지 않다 보니 논쟁의 승부가 나기도 어렵다. 객관적으로 승부가 났는데도 패배한 당사자는 인정을 않으니 양쪽 모두 감정만 상할 뿐이다. 그러다 보니 가급적 논쟁거리가 생겨도 입을 다무는 경우가 많다.
이 원칙을 잘 지키는 편인데 하필 지난달 친구들 모임은 대규모 도심 집회가 열렸던 다음 주였다. 자연스레 시위가 화제의 중심에 올랐고, '물대포'와 '쇠파이프'로 친구들 의견이 갈렸다. 칠순 가까운 농민에게 물대포를 '직사'한 과잉진압에 대한 비판과 쇠파이프로 경찰차와 경찰을 공격한 법 위반 사이에서 접점은 찾아지지 않았다. 다행히 정치 얘기로 '의'가 상할 정도의 격정적인 시기는 지나서인지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됐지만 마음 한구석은 찜찜할 수밖에 없었다.
고집불통 코너의 주인공에게는 안 되고, 자신의 지인에게는 되는 경비아저씨의 이중 잣대 역시 그냥 웃어 넘기기엔 걸리는 게 많은 게 사실이다. 거창하게 힘 있는 사람들의 특혜 논란까지 갈 것 없이 일상에서도 이런 일은 다반사다. 오히려 모든 이에게 똑같이 엄격하게 대했다간 꽉 막혔다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고집불통의 경비아저씨 같은 이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불통 대신 소통이 대세인 세상이 올까. "너나 잘 하세요"라고 누군가 얘기할 듯 싶다.
전필수 증권부장 phils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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