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주연 기자]'누구나 시작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는 없는 일.' 기업 현장에서는 영업을 이렇게 정의 내린다. 무조건 제품을 판매하기만 되면 일인 줄 알고 단순하게 접근했다가는 오래 버티기 힘들기 때문이다. 상품 판매에 있어 최전선에 있기 때문에 '기업의 꽃'이라고 부르지만, 일의 강도가 높고 영업성과가 낮으면 인센티브도 적어 스트레스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 또한 직접 사람을 대면해야하는 업무의 특성상 적성과 성격도 뒷받침 되어야한다. 본인에게 매달 배당되는 목표치도 부담이다. 이 때문에 영업 이직률은 타업종에 비해 높은 편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영업 이직률은 20%대로 연구직(5%) 등에 비해 4배 높다. 이러한 치열한 영업 전장에서 눈에 띄게 성과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 판매왕들의 공통점은 영업을 정의내림에 있어 한 가지 더 붙이는 게 있다. '공감'이다. 공감을 바탕으로 한 '신뢰'로 사람의 마음을 먼저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목소리 낮춘 '1분1억' 女…자신만의 스토리로 믿음을 심다
2014년 11월 18일 9시30분. 홈쇼핑업계에 잭팟이 터졌다. 라마코트와 기모팬츠 등 겨울 의류 상품을 판매 중이던 CJ오쇼핑 방송 관계자들은 탄성을 질렀다. 단 3시간 방송에 총 2만4500세트가 팔려나가며 역대 최대 매출을 올린 것. 주문금액은 51억원을 초과했다. "역시 유난희다"라는 말이 쏟아져나왔다.
홈쇼핑업계에서 유난희 쇼호스트는 '억단위 분당 매출시대'를 연 주인공으로 통한다. 홈쇼핑 최초 쇼호스트로,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건 프로그램을 론칭하고 전문직으로서의 쇼호스트 제도를 정착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1995년 HSTV(현 CJ오쇼핑) 입사 후 현재까지 현업에서 활동하며 홈쇼핑 20년 역사를 함께 한 쇼호스트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한다. 국내 최초로 홈쇼핑업계 분당 매출 1억원을 기록한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유난희 쇼호스트의 연간 평균 매출액은 약 2000억원. 20년간 누적 판매액으로 치면 수 조원에 이른다.
비결은 뭘까. 유난희 쇼호스트는 목소리 톤을 낮춰 차분하고 진중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상품에 대한 정확한 사실은 물론 자신만의 스토리를 통한 방송 진행으로 상품의 내적 가치를 전달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유난희 쇼호스트가 중요시하는 것은 '소통'이다. 그는 "쇼호스트는 판매하는 사람만 되어서는 안 된다"며 "순간의 매출을 올리는데 급급하기보다 자세한 정보와 '믿음'을 줘야한다"고 강조하고 다닌다. 쇼호스트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도 분명하다.
"쇼호스트란 고객과 함께 같은 물건을 쓰면서 공감하고 기뻐하고 슬퍼하는 사람입니다."
◆빨대 꽂아주는 그녀, 야쿠女王
'연 매출 2억8000만원, 고정 고객 560명….' 이쯤 되면 걸어 다니는 '1인 기업'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이러한 억대 매출을 170원짜리 야쿠르트 판매만으로 일궈 낸 것이라면? 올해로 한국야쿠르트 경력 10년째인 김부씨는 최근 '야쿠르트 판매왕'으로 꼽혔다. 경남 양산지역 어곡 산업단지에서 활동하는 김씨는 자동차 부품 제조기 업 등에서 일하는 5000여명의 근로자가 주고객이다. 김씨가 가장 신경쓰는 부분은 고객과의 신뢰다. 약속된 시간과 장소에 제품을 전달하는 것은 기본이고 자리를 비우기 어려운 고객을 위해 심부름도 도맡아하며 신뢰를 얻었다. 직업 특성상 장갑을 끼고 일하는 고객에게는 야쿠르트 병에 빨대를 꽂아 전달하면서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뿐만 아니라 고객의 경조사까지 챙겨가며 그야말로 이웃집 '아줌마'처럼 다가가려 노력했다. 얼마 전 출산했다는 새댁에게는 아기 양말을 선물하기도 했다. 제품만 판매하는 것이라면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일들이다.
김씨는 "고객들에게 기본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수시로 손거울을 보며 용모를 점검하고 눈을 맞추며 인사하는 연습을 한다. 외모가 반드시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단정함'은 기본이라는 생각에서다. 뿐만 아니라 고객을 만날 때는 넥타이, 헤어스타일 같은 작은 변화를 놓치지 않고 관심을 보이며 칭찬과 인사를 한다.
김씨는 "평소 건강관련 TV를 보며 고객에게 건강 정보를 전달하고 홈쇼핑을 보면서 멘트를 연습한다"면서 "고객을 사로잡을 수 있는 비결은 제품에 대한 자신감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발라주는 그녀, 아모레 퀸
화장품 업계에서는 방문판매원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 있다. 바로 '카운슬러'다. 화장품을 판매하는 사람에게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주고 상담해주는 '카운슬러'라니 쉽게 납득이 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만큼 화장품 방문판매원들은 고객 한명 한명과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양정윤 아모레퍼시픽 카운슬러는 15년 전부터 화장품 방문판매 일을 시작했다. 이때 만난 고객과는 '언니,동생'하면서 지낼 정도로 가까워졌다. 단순히 화장품 판매원과 고객 관계를 뛰어넘어 서로의 마음을 오래도록 나눈 덕이다. 양씨는 화장품 판매에만 그치지 않고 특별한 날에는 직접 고객들에게 메이크업 서비스를 해주기도 한다. 고될 법도 하지만 한번도 '힘들다, 어렵다'는 얘기를 꺼낸 적은 없다. 매번 '고맙다, 행복하다'라고 말하고 다니며 행복 바이러스를 퍼트리고 다닌다. 이 덕분에 고객은 물론 동료들에게도 언제나 정이 넘친다. 지난해 방판 수석 마스터 세미나에서는 '뉴리더 20인' 중 '친밀 리더'에 선정되기도 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각 분야에 있는 영업의 달인들을 보면 선천적으로 '영업 체질'인처럼 보인다"며 "그러나 이들 대다수는 초창기 '맨 땅에 헤딩'을 밥먹듯이 하고 내성적인 본인의 성격까지 바꿔가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사람들"이라고 치하했다.
오주연 기자 moon17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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