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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승합차와 외제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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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승합차와 외제차 전필수 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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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 회사를 운영하는 A는 차가 2대였다. 영업을 하러 갈 때는 국산 준대형 승용차를, 현장 공사를 할 때는 승합차를 몰고 갔다. 현장을 갈 일이 많다 보니 친구들과 저녁 자리엔 주로 승합차를 몰고 나왔다. 그런 그가 최근 모임에서 딱 보기에도 값이 나가 보이는 외제 픽업(Pick up) 차량을 몰고 나왔다. 겉치레보다 실속을 챙기는 스타일인 A의 변신에 친구들은 "뭔 바람이 났느냐"고 한마디씩 했다.


친구들의 추궁에 A는 변심(?)을 한 사연을 털어놨다. A가 십수 년간 애용하던 승합차를 버린 것은 인테리어 공사를 하던 빌딩의 경비원 때문이었다. 대부분 경비원들은 A가 승용차를 타고 갈 때와 승합차를 타고 갈 때 대우가 180도 달랐단다. 승용차를 타고 갔을 때는 깍듯하게 대하다가도 승합차를 타고 가면 "차를 쓰레기 분리 수거하는 곳 옆에 대라"는 식으로 무시하기 일쑤였다.

십수 년을 그런 대우를 받으면서도 A는 세상 인심이란 게 본디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경비원들한테 인사 한번 받는 것보다 실속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런 A를 바꾼 사건은 최근에 일어났다. 승합차를 몰고 간 빌딩에서 A가 사소한 실수를 저질렀는데 그걸 본 경비원이 무차별 폭언을 퍼붓더란다.


"한두 번도 아니었다면서 왜 참지 못했냐"는 친구의 얘기에 A는 차마 입에 올리기도 민망한 수준의 폭언에 자존심까지 무너졌다며 쓴맛을 다셨다. 어쨌든 그 경비원의 폭억 덕분(?)에 A는 어느 공사 현장을 가도 이젠 사장님 대접을 깍듯이 받는다.

공자(孔子)의 제자 중에 자우(子羽)라는 이가 있었다. 그는 얼굴이 아주 못 생겼다. 공자도 자우를 보고 생김새가 우둔하고 행동이 굼뜨다며 마음속으로 장래성이 없을 것이라고 여겼다. 자우와 달리 재아(宰我)란 제자는 잘 생긴 데다 말주변도 좋았다. 재아와 처음 얘기를 나눈 후 공자는 재아를 얻기 어려운 인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자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자우는 학업에 매진해 훌륭한 학자가 된 반면 재아는 공부를 게을리해 조금도 진전을 하지 못했다. 재아를 타이르던 공자가 "썩은 나무는 다듬을 수 없다"고 화를 낼 정도로 스승을 실망시켰다.


공자 같은 성인도 겉모습을 보고 사람을 잘못 판단할 정도였으니 무슨 차를 타느냐로 사람을 판단하는 세태를 비난만 할 수는 없다. 그래도 가진 자에게는 굽실거리고, 없는 사람에게 '갑질'을 하는 모습은 씁쓸할 수밖에 없다.






전필수 증권부장 phils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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