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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구, 수원지 품은 사막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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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구, 수원지 품은 사막 그리다 설경구[사진=백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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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수원지를 안은 사막." 이창동(61) 감독이 배우 설경구(47)를 두고 한 말이다. 겉으로 보면 감정이 없는 듯 건조한데 풍부한 감성이 숨겨져 있다는 뜻이다. 장점은 이 감독의 '박하사탕(1999)'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김영호의 얼굴과 말투에서 현대 한국사의 굴곡과 소시민의 애환이 그대로 전해진다.

설경구는 흔한 사람들의 일상을 맛깔나게 표현하는 배우다. 원동력은 자연스러움에 있다. '실미도(2003)'와 '소원(2013)'을 맨 얼굴로 촬영할 만큼 인위적 덧칠을 신경 쓰지 않는다. 촬영된 영상을 따로 확인하는 법도 없다. 동료 배우와의 대화에서 연기에 대한 이야기도 일절 삼가한다. 그저 극 안으로 저벅저벅 들어가 맡은 인물이 되려고만 노력한다. 그는 "촬영장에서 내가 할 일은 연기뿐이다. 다른 데 간섭을 할 여력도 없다"고 했다.


설경구는 수동적인 성향이 강하다. 1994년부터 3년간 참여한 뮤지컬 '지하철 1호선'에서 두 역할을 제외한 70여 가지 역할을 두루 연기했는데 "김민기(64) 극단학전 대표가 시켜서 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오디션을 본 적도 없다. 극단학전에 있던 대학 선배의 부탁으로 연극 포스터를 붙이다가 배우로 발탁됐고, 대학 동기인 심광진(49) 감독의 추천으로 '꽃잎(1996)'에 출연하며 영화에 데뷔했다. 설경구는 "그 흔한 프로필 사진 한 장 없었다. 따지고 보면 운이 좋은 편"이라고 했다.

설경구, 수원지 품은 사막 그리다 영화 '서부전선' 스틸 컷


'공공의 적(2002)'은 그런 그가 처음으로 욕심을 부린 영화다. 직접 강우석(55) 감독을 찾아가 출연을 자청했다. 설경구가 맡은 강철중의 성격은 '박하사탕'의 김영호와 크게 대조된다. 같은 소시민이지만 존재의 근본 따위를 생각하지 않는다. 투박한 근성을 앞세워 삶을 거침없이 질주한다. 설경구는 김영호의 삶에 그대로 녹아내린 것처럼 강철중을 표현하지 못한다. 대신 훌륭한 '연기'를 하면서 매력적인 캐릭터를 선보인다. 그리고 이 묘사는 언제부턴가 설경구의 주 무기가 됐다.


아무리 구위가 빼어나도 한 가지 구종만으로 마운드를 오래 버티는 건 쉽지 않다. 설경구는 비슷한 연기로 '광복절특사(2002)', '오아시스(2002)', '실미도(2003)' 등을 잇달아 흥행 반열에 올렸다. 그러나 이후 '해운대(2009)'를 제외하고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오히려 연기에서 감정이 과잉됐다는 지적을 받는다. 선 굵은 인물을 계속 맡아 생긴 현상이다. '사랑을 놓치다(2006)', '소원' 등을 통해 변신을 꾀했지만 '박하사탕'에서 뽐낸 일상 연기를 따라잡기에 역부족했다.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었던 '그놈 목소리(2007)'에서도 극적 갈등을 수월하게 고조시키지만 풍부한 감성까지 살리진 못했다.


설경구, 수원지 품은 사막 그리다 설경구[사진=백소아 기자]


설경구는 "작품이 만들어져서 돌이킬 수 없을 때, 연기가 두려워진다"고 했다. "배우는 소모되는 직업이다. 재료는 한정돼 있는데 비슷한 재료를 계속 쓰니까 어려운 것 같다. 이제는 해보지 않은 역할을 하고 싶다." 지난 24일 개봉한 '서부전선'은 그런 기대를 충족하기에 역부족하다. 남한군 남복을 맡았는데 '공공의 적'부터 줄곧 해온 액션과 욕설이 그대로 반복된다.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코믹 연기도 이전 영화들의 그것과 차이가 없다. 설경구는 "어수룩하게 보이려고 했다. 여진구(18)가 연기하는 북한군 영광이 똘똘하다보니 어떻게 조화를 이룰까만 고민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솔직히 여느 영화보다 편하게 작업했다. 오락영화로써의 기능을 온전히 보여주는데 한계가 있지만 최선을 다 했다"고 했다.


최근 '나의 독재자(2014)', '소원' 등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설경구는 다소 능동적으로 변했다. 그는 "캐릭터에 욕심이 나기 시작한다. 사극 등 아직 못 해본 역할이 많다"면서 "무엇보다 영화계에 피해를 주는 배우가 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강철중에 얽매인 게 아니냐는 시선에 "하나의 역할과 함께 늙어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던 태연함은 얼굴에서 사라졌다. 승패에 연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그 눈빛은 강철중을 닮았다. 체중 감량을 위해 일산에서 명동까지 모래주머니를 찬 채 걸어 다니고, 매일 줄넘기를 수천 번씩 할 만큼의 집념이 담겨 있다. 따지고 보면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치던 김영호도 그런 일념이 빚어낸 산물이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백소아 사진기자 sharp2046@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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