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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습격]바늘도둑은 소도둑이 되지 않는다

시계아이콘읽는 시간1분 4초

[낱말의 습격]바늘도둑은 소도둑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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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도둑이 소도둑된다는 격언은, 바늘을 훔친 '아이'에게. 커서 소도둑이 될 거라고 저주를 퍼붓는 건 아니다. 사실, 우리는 예방할 수 있었던 문제를 처음에 단속하지 못하여 결국 걷잡을 수 없이 허우적거리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어리석음을 생각하노라면, 사소한 징후와 잘못들에 예민해지고 엄격해지는 일은 참 중요하다 싶다. 초동진압이나 예방의 효용을 강조하는 것 외에도, 이 격언은 음미할 만한 구석이 좀 있다. 우선 습관의 문제이다. 바늘 하나쯤 훔친 도둑이라면 그걸 범죄로 보기 어렵다. 그 일이 교정되지 않고 넘어가는 이유는, 훔친 물건의 값어치가 작기에 관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도둑질의 경우는 다르다. 옛 시골에선 소라는 가축이 전재산인 경우도 많았다. 소를 훔쳐가는 도둑은, 한 집안의 안녕과 꿈을 훔쳐가는 것이다.


두 '장물' 사이에는 많은 중간 단계의 장물들이 숨어 있다. 바늘을 훔친 뒤, 책도 훔쳤을 것이고, 세숫대야도 훔쳤을 것이고, 닭도 훔쳤을 것이고, 스마트폰도 훔쳤을 것이다. 처음에 훔칠 땐 몹시 불안했고 자신의 행위에 대해 가책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곧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면서 무심해지고 대범해진다. 습관은 무섭다. 쿵쿵거리는 일말의 양심을 슬그머니 죽여버린다. 바늘에서 소로 넘어가는 과정은, 도둑질이 습관이 되는 과정과 죄책감이 둔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처음엔 필요 때문에 훔쳤다 하더라도, 갈수록 훔치는 그 일 자체에 매료된다.


하지만 나는 이 격언이 오해를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바느질과 농경이 삶의 핵심풍경이던 시절에는 실감났을지 모르지만, 이젠 그걸 훔치는 일이 흔하지도 않다. 요즘 시절에 활약하는 바늘도둑과 소도둑이 있다면 분명, 두 사람은 전공이 다른 사람이다. 바늘을 훔치는 쪽은 정교하고 치밀한 엔지니어형 도둑이다. 그리고 소를 훔치는 도둑은 안 그래도 살기 숨찬 농민들을 등치는 시골양아치다. 바늘을 훔치다가 간을 키워서 소를 훔치기에는 이 시대의 장물들의 리스트가 너무 많이 바뀌었다.


바늘도둑은 개과천선해서 그 바늘 훔친 걸로 쫑내고, 소도둑은 소 한 마리에서 그치는 게 백번 옳다.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거라면, 바늘도둑이 소도둑이 된다는 건 지나친 비약이다. 바늘도둑을 거치지 않은 소도둑은 그럼 어떻게 되는가. 오히려 바늘도둑은 큰 바늘도둑이 되고 소도둑은 큰 소도둑이 된다는 것이 그럴 듯해 보인다. 그렇게 말한다 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그 격언이 무슨 재미가 있느냐는 것이 그 첫째고, 장물의 크기가 죄의 크기라는 점을 강조하다 보면 '훔치는 일' 자체의 반사회적 함의가 경시될 수도 있다는 게 그 둘째다. 습관이 중요하다는 취지라면, 하필 도둑질을 내세울 일이 무엇인가. "얘들아 바늘 훔치지 말아라, 그러다가 크면 소 훔친다." 참 썰렁한 선생님이시다. 그치?






빈섬 이상국(편집부장ㆍ시인)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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