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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의 즐거움]김춘수 '꽃'과 도덕경 제1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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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의 즐거움]김춘수 '꽃'과 도덕경 제1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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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無名)/그는 다만(天地)/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之始)/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有名)/그는 나에게로 와서(萬物)/꽃이 되었다.(之母)


이 구절은 마치 도덕경 제 1장의 무명천지지시 유명만물지모(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를 직역한 것처럼 정확하게 상응한다.

'그는 다만 …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한 것은 바로 아직 세상이 시작되기 이전 태동기의 카오스를 의미한다. '그는 다만'이 왜 '천지'와 같은 개념인가. 이때의 천지는 '분화되지 않은 우주'인데, 진짜 만물이 분화되지 않은 게 아니고 인간의 인식과 분별 속에 분화되지 않은 우주를 말한다. 이것이 서양 과학의 카오스와 노자의 카오스가 달라지는 지점이다. '다만'이란 말은 분별되기 이전의 우주를 표현하는 기막힌 낱말이 아닌가. 아직도 무엇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는 (비로소) 나에게로 와서 …이 되었다'는 것은 분별과 인식의 세계인 문명세계로 접어든 것을 뜻한다. '나에게로 와서'가 왜 '만물'로 치환될 수 있을까. 나에게로 온다는 것은 내 인식세계로 들어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의 인식세계 속에 들어와야 만물은 만물이 될 수 있다. 들어오지 않은 것은 카오스상태로 있는 것이다.

몸짓은 시(始)의 놀라운 번역이다. '시(始)'는 여자의 몸에 남자의 정자가 막 결합하기 직전의 결정적 순간을 뜻하는데, 이것이야 말로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어떤 몸짓의 기미와 일치하지 않는가. '그는 나에게로 와서'라는 말은 성적 결합의 암시이다. 내가 그것의 이름을 꽃이라고 불렀을 때, 나라는 인간과 이름없던 저 붉은 것은 마치 섹스를 하듯 서로 결합해 '꽃'이라는 것을 낳는다. 꽃을 낳았으니 꽃의 어머니이다. 이것이 노자가 말하는 '만물의 어머니'이고 김춘수가 말하는 '꽃의 탄생비밀'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天下有始 以爲天下母)/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旣得其母)/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復知其子)/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旣知其子 旣得其母 沒身不殆)


이 구절은 노자의 주장들이 무르익는 도덕경 제52장의 구절들을 빼다박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은 천하가 시작된 비밀인데, '꽃이라고 호명함으로써 비로소 꽃을 낳아 만물의 시작을 이룬 것처럼'이란 의미이다.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이란 말은 '내가 낳은 꽃에 알맞는'이란 뜻이다. 꽃의 빛깔과 꽃의 향기를 갖춰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어머니의 격(格)을 얻을 수 있다.




빈섬 이상국(편집부장ㆍ시인)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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