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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1억 올려달라 해도 월세 아니면 고마워"

시계아이콘읽는 시간1분 19초

전세가율 80% 시대, 그마저도 없어서 못 구하는 '미친 전세'의 나라


"전세 1억 올려달라 해도 월세 아니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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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인경 기자]
"어휴, 나도 젊어서 애들 데리고 이사 다녀봐서 그 마음 알지. 뭐 매달 월세 들어왔나 확인하는 것도 번거롭고 해서 그냥 시세대로만 받겠다는 거야."


지난 5일 서울 공덕동에 위치한 P공인중개업소. 주부 K씨가 집주인과 만나 전세 재계약서를 작성 중이었다. 지은 지 14년 된 '공덕래미안2차' 전용면적 84㎡ 아파트 전세금은 2년 전 이사올 때보다 정확히 1억원 올랐다. 4억5000만원이다. 집주인은 기존 전세금을 그대로 둔 채 월세로 50만원을 받고 싶어했다. 통사정을 해서 겨우 전세를 유지했다. K씨는 "강남도 아닌데 2년 만에 집값이 1억원, 전셋값도 똑같이 1억원이 올랐다"고 푸념했다. 그러면서도 "주변에서는 오히려 좋은 주인 만나 전세금 올려주고 계속 살 수 있으니 다행이라며 부러워한다"는 말로 최악의 전세난 풍경을 전했다.

결혼 2년차 맞벌이 L씨 부부는 만기를 두 달 앞두고 집주인으로부터 보증부월세(반전세)로 계약하자는 통보를 받았다. 월세를 내다보면 돈 모으기는 어려워진다는 생각에 새로운 전셋집을 구하려 했으나 가시밭길이었다. L씨는 "워낙 전세가 귀하니 집을 보여주지도 않은 채 계약금부터 걸라는 것까지도 이해했는데, 융자가 40% 가까이 되는 집을 소개하는 중개업소가 있는가 하면, 계약서에 사인하기 직전에 전세금을 2000만원이나 올리는 집주인의 갑질에 집없는 설움을 제대로 겪었다"고 했다. 결국 L씨가 계약한 강동구 암사동 '프라이어팰리스' 59㎡ 아파트 전셋값은 2년 전에 비해 1억원이 오른 4억1000만원이었다.


전세난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미친 전세값'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듯한 형국이다. "적정 전세가격이란 없다. 주인이 부르는 게 전셋값"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최근 전세난은 과거와 양상이 다르다. 주택 재고가 부족해서 벌어지는 품귀라기보다는 집주인들이 전세를 월세로 빠르게 전환하고 세입자들은 전세를 고집하면서 매맷값에 근접한 전세가 속출하는 것이다.


기준금리 1%대의 초저금리 기조가 계속되면서 집주인들은 전세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극히 쪼그라들었다. 반면 세입자들은 월 50만~70만원 이상인 보증부월세보다도 차라리 전세담보대출을 통해 보증금을 올려주는 편을 선호한다.


부동산114 조사를 보면 서울의 아파트 전셋값은 지난해 6월 이후 63주 연속 상승세를 기록 중이다. KB국민은행 조사로는 올 들어 서울의 아파트 전세가격이 6.46% 상승했고, 아파트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전세가율)은 70.9%로 치솟았다.


특히 성북구의 경우 지난달 전세가율이 80%를 넘었고 일부 단지에서는 매매가를 넘어선 전세계약 사례가 나타날 정도다.


수급 상황을 놓고 볼 때는 앞으로가 더 큰 문제다. 서울은 올해 새 아파트 입주물량이 지난해(3만7000가구)보다 46%나 적은 2만가구에 그쳐 전세로 나올 신규 공급물량 자체가 줄어든다. 그런가하면 강남구 개포동과 강동구 상일동 등에서는 재건축 이주가 줄줄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전세난이 저성장ㆍ저금리라는 장기 추세에 따른 구조적인 변화인 만큼 단기간에 끝나지 않고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올 가을 전세난은 시장에서 전세가 거의 사라지면서 나타나는 후폭풍으로 볼 수 있다"며 "최근 정부의 가계부채 종합대책이 나오고 중국발 금융시장 불안 등이 나타나면서 매매 전환을 고려하던 세입자들이 관망세로 돌아선 것도 영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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