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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6000명을 살해한 범인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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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9월 1일. 간토(關東) 지역을 강타한 매그니튜드 7.9, 최대 진도 7의 대지진으로 일본 사회는 혼란에 빠졌다. 지진은 대규모 화재와 해일(쓰나미)을 가져왔고 죽거나 실종된 이들이 40만 명에 달했다. 경제 불황에 대지진까지 겹치자 일본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려고 했고 이를 위해 재일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있다는 유언비어를 조직적으로 유포했다.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정부로 향하는 분노의 민심을 돌리기 위해 조선인들을 증오의 표적으로 만든 것이다. 정부의 선동에 일본인들은 전국에서 3689개의 자경단을 만들어 조선인을 살해했다. 이들이 살해한 조선인 숫자는 6000명이 넘었다고 한다. 바로 '간토대학살'이다.


1일은 간토대학살이 벌어진 지 92년이 되는 날이다. 하지만 92년이 지나도록 간토대학살에 대한 진상규명은 물론 책임자 처벌도, 사과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당시 직접 학살에 나선 이들은 죽창 등을 든 자경단과 여기에 가담한 군경이었다. 평범한 일본인이 아무렇지 않게 조선인 집단학살에 나선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사실상 일본 정부의 조직적인 지휘 아래 진행됐다.

당시 야마모토 곤노효에(山本權兵衛) 내각은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타고 있다', '반란을 일으켜 군인들과 싸우고 있다', '지진이 일어난 뒤 약탈을 일삼고 있다'는 등의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내무성이 경찰에 보낸 문서에 이 같은 내용이 담겼다. 이어 이를 사람들이 사실로 믿도록 공작대를 조직해 조선인들이 벌인 것으로 보이는 테러 활동을 조작했다. 또 자경단이 만들어지자 조선인 학살에 나서도록 부추겼고 혼란의 와중에 정부에 비판적이었던 노동운동가 히라사자와 게이시치(平澤計七), 사회주의지도자 오스기 사카에(大杉榮)부부 등 일본의 진보적 인사 수십 명을 검거해 살해했다. 하지만 학살이 알려진 뒤에도 일본 정부는 책임을 인정하거나 사죄하지 않았다.


한국인 6000명을 살해한 범인의 정체 간토대학살 추정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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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프리랜서 작가 가토 나오키는 최근 출간한 '구월 도쿄의 거리에서'에 이 참혹한 학살극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고 썼다. 92년 전 간토대학살이 벌어졌던 도쿄에서 지금 '조선인을 몰살해야 한다'고 외치는 혐한(嫌韓) 시위가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진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도쿄는 인종주의에서 비롯한 유언비어에 선동돼 평범한 사람이 학살에 손을 담근 과거를 갖고 있는 도시"라며 "간토대학살의 진상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지난해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유기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을 대표발의 했다. 이 법은 국무총리 소속의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하고 4년 동안 활동하며 진상조사와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한 활동을 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아직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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