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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의 책보기] 조선정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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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얘긴데 왜 지금 상황같지?

[최보기의 책보기] 조선정벌 조선정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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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 전면전을 외치며 충돌했던 엊그제 중국발 만평 한 컷이 우리의 자존심을 심히 긁었다. 중국과 미국 대표가 탁상에 마주 앉아있고, 태극기가 놓인 오른쪽에 여자아이가 장난감 전투기를 들고 좋아라 웃으며 앉아있다. 왼쪽에는 철부지 남자아이가 인공기와 장난감 핵폭탄을 들고 까부는데 중국 대표가 굵은 손가락으로 자리에 앉으라는 제스처와 위협적 인상을 쓰는 장면이다.


필자라면 거기에 미국 대표를 거드는 일본인 종업원도 더했을 성 싶다. 비록 자존심 상하지만 그것이 현재 한반도의 엄연한 현실이다. 만평을 좀 비약하자면 그 다음 컷은 양국 대표가 자기들 대신 두 아이에게 싸움을 붙일 수도 있다. 남과 북이 손을 꼭 잡고 놓지 말아야 하는 절실한 이유다. 상황이 급변해 양국이 한반도에서 대리전을 치르려 해도 우리끼리 친해 싸우지 않겠다면 쉽지 않은 일이다.

‘조선정벌’이라는 책 제목이 섬뜩하다. ‘조선’을 ‘한국’으로 바꾸면 백 년 전 역사가 그대로 현재 상황이 되어서다. 실제로 일본의 지식인이라는 자들이 부르짖었던 ‘정한론(征韓論)’의 가운데 글자는 한국의 한(韓)이다. 애석한 것은 당시 일본과 조선의 개항에 22년의 시차가 있긴 했지만 개항 이후 34년의 골든타임에 고종과 지도층들이 현명했다면 정벌을 피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까지 이어지는 분단의 비극도 없었을 것이다. (문소영 지음, ‘조선의 못난 개항’).


‘조선정벌’이 다루는 시기는 1854년부터 1945년까지다. 1854년은 미국 페리함대에게 일본이 강제개항을 당했던 해다. 이때부터 일본의 유신과 군국주의가 본격화됐고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미개한 조선에 일본 통치의 영광을 주자‘며 정벌을 위한 치밀한 기획이 시작됐다. 말인즉슨, 조선이 1910년 8월 하루 아침에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던 것이 아니라 56년에 걸친 ‘작계’의 결과였다. 그 작전계획을 짜고, 앞장서 실행했던 요시다 쇼인, 후쿠자와 유키치, 이토 히로부미, 데라우찌 마사타케 등 일본인 15명의 행적과 만행을 낱낱이 밝혔다. 그들과 정 반대로 식민지 조선에 인간적이었던 4명의 인물이 더 있지만 그건 이 책의 본류가 아니다.

“1853년 미국 페리 함대가 일본을 개항시킵니다. 그리고 23년 후인 1876년 일본이 조선을 개항시킵니다. 일본보다 23년 늦기는 했지만 그래도 개항 이후 30여 년의 기회가 있었는데 조선은 결국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천금 같은 30년의 기회를 살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조선의 못난 개항. 문소영 지음. 역사의 아침 펴냄)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일본의 조선정벌 승인 후 포츠머스 러일 강화조약에서 이를 재차 확인했던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카리브 해 연안의 쿠바를 미국이 지배하듯이 황해 연안의 조선을 일본이 지배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일본 대표에게 말했다.(‘조선정벌’ 123페이지). 90년 후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등의 영화로 한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던 미국 여배우 맥 라이언은 한국기업과 광고모델 계약 후 방송에서 ‘이름도 모르는 동양의 어떤 나라’라 말해 우리의 자존심을 뭉갰다. 완벽한 짝사랑이었다. 그게 지금이라고 얼마나 달라졌을까.


‘국화와 칼’의 저자 루스 베네딕트는 ‘탐미와 잔혹의 이중성, 인간을 신으로 모시는 부조리, 부대원 전체가 죽어도 항복을 모르는 사무라이’를 일본인의 난해한 특성으로 꼽았다. 그들의 난해함은 여전히 불변이다. 과거를 진심으로 사죄하지 않는다. 여전히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우긴다. 국제관계는 힘이 정의인데 우리의 힘은 일본에 여전히 게임도 안 된다. 15명 중 우리가 직접 응징한 자는 안중근 의사가 쏜 이토 히로부미가 유일하다. 분하다. <이상각 지음/유리창/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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