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청탁 명목, 돈 뜯어내다 검거돼 구속…금품 건네면 벌금형 가능? 허무맹랑한 얘기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남해안에서도 손꼽히는 절경을 자랑하는 ‘외딴 섬’. TV에서도 자주 소개됐던 아름다운 그 섬에 간 큰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얼마나 대담한 이들인지 마약 사범을 범죄의 대상으로 삼았다. 뛰는 사람 위에 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 어울릴만한 사건이다.
부산지검 강력부(부장검사 김태권)가 공개한 ‘부부 브로커’ 사건은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마약 전과 9범의 A씨는 사기 전과가 있는 B씨와 사실혼 관계다. A씨는 마약 사건에 연루돼 기소된 C씨에게 접근했다. B씨 삼촌이 서울중앙지검에 있는데 전에도 벌금으로 사건을 해결해줬다면서 돈을 요구했다.
“검사에게 부탁해서 벌금을 구형하려면 2500만원이 필요하다. 판사에게도 돈을 줘야 한다.”
검사와 판사에게 돈을 줘서 형량을 조절할 수 있다는 주장은 실현 가능한 얘기일까. 일반인들은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느끼겠지만 그 얘기를 들은 C씨는 A씨 부부에게 2500만원을 건넸다.
물론 A씨 부부의 약속은 지켜질 리 없었다. A씨도 생각은 있었다. 벌금형이나 집행유예가 선고될 경우 자신의 공로인 것처럼 꾸밀 생각이었다. 하지만 C씨는 1심에서 징역 1년 2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A씨 부부는 연락을 끊은 뒤 잠적했다. 잠적한 곳이 바로 남해안의 절경이라는 그 외딴섬이다. 무려 5개월간 숨어 사는 데 성공했지만, 결국 꼬리가 밟혔고 검찰 수사관들에게 검거됐다.
마약 사범을 등친 ‘브로커’ 사례는 A씨 부부만이 아니었다. 마약 전과 3회의 D씨는 마약 전과 7회의 E씨에게 접근했다. D씨는 검찰 수사관에게 부탁해 재판 중인 마약 사건을 해결해주겠다면서 현금 1400만원, 고가의 시계 4개(2000만원 상당) 등 3400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D씨는 마약 전과 4회의 F씨에게도 접근해 같은 수법으로 1500만원을 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D씨는 F씨가 의문을 제기하자 “걱정 마라, 검사가 벌금을 구형할 때 특별히 쪽지를 적어서 판사에게 주면 판사가 틀림없이 벌금으로 해준다”면서 안심을 시키기도 했다.
정말 검사가 판사에게 쪽지를 건네면 벌금으로 형량이 조정될까. 검찰의 설명은 전혀 달랐다. 초범 등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법원이 벌금을 선고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여러 차례 마약 범죄에 연루된 이들의 경우 벌금형은 처음부터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다.
마약 사범들이 허무맹랑한 얘기에 속아 넘어가는 이유가 있다. 마약 사범들 사이에서는 전과 회수에 따라 형량이 정형화돼 있어 변호사를 선임해도 소용이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고 한다.
청탁과 뒷돈 등의 방법이 정상적인 법적 대응보다 효과적이라는 판단에 따라 브로커의 사탕발림 약속에 넘어가고 있다. 마약 전과가 많은 사람일수록 음성적인 방법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더 심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마약 사범이 형량을 낮출 수 있는 비법(?)은 없는 것일까. 검찰이 설명한 방법은 이런 것이었다.
“청탁이나 뒷돈으로는 결코 (재판) 결과를 바꿀 수 없다. ‘상선(마약사범에게 마약을 공급한 자)’ 제보를 통한 진정한 반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양형인자이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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