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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왕자의 난과 석고대죄

시계아이콘읽는 시간53초

1398년 10월. 태조 이성계의 다섯 째 아들인 이방원(태종)은 군사를 일으켜 이복동생인 세자(방석)와 방번을 살해한다. 충격을 받은 고령의 이성계는 왕위를 둘째 아들인 방과(정종)에게 물려주고 고향인 함흥으로 낙향한다. 사극의 단골 소재이기도 한 '왕자의 난'의 줄거리다.


이보다 760여년 앞선 서기 626년. 중국 당나라의 수도 장안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당의 창업군주인 이연(고조)의 차남인 이세민(당태종)은 형인 황태자 이건성과 동생인 제왕 이원길을 궁중에서 암살하는 데 성공한다. 이후 이세민은 늙은 아버지로부터 황태자로 책봉받고, 몇 달 후 양위를 받는다.

봉건왕조 시대, 왕권을 차지하기 위한 왕자들 간의 다툼은 이 밖에도 수두룩하다. 혈연으로 왕권이 승계되고 왕에게 권력이 집중되던 시대, 형제만 제거하면 권력이 오롯이 자기 것이 된다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왕자들은 칼을 드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당장 왕자의 난을 일으켜 이복동생들을 죽인 이방원은 2년 뒤 동복 형인 방간(회안대군)과 싸워 이긴 뒤에야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2차 왕자의 난이다. 그래도 친형이라고 태종은 방간을 죽이지 않고 유배를 보냈다. 당태종이 현무문에서 직접 화살로 형을 쏴 죽이는 과단성을 보인 것에 비하면 그나마 인간적(?)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왕자의 난'은 끊이지 않고 있다. 2000년 초 당시 재계 서열 1위를 다투던 현대그룹이 정몽구ㆍ몽헌 회장 간의 경영권 다툼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더니 형제간 경영권 승계 전통이 강했던 두산과 금호그룹에서도 형제간 다툼으로 충격을 줬다.


올여름에는 재계 서열 5위 롯데그룹이 또 하나의 사극 드라마(다큐멘터리?)를 방영 중이다. 경영권 경쟁에서 밀렸던 장남이 며느리와 함께 아버지 방 앞에서 10여일을 무릎 꿇고 용서를 빌었다는 뉴스는 조선시대 세자가 왕의 침전 앞에서 '석고대죄'를 하는 모습과 완벽히 '오버랩'된다.


유교적 질서가 지배하던 과거 동아시아에서 핏줄은 왕권을 승계하는 데 가장 중요한 명분이었다. 여기에 효(孝)가 중시되다 보니 아버지인 왕의 의중은 형제간 후계구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고,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주'인 시대다. 그런데도 재벌가에서는 조선시대 사극에서나 나올 법한 모습이 잊을 만하면 재연된다. 재벌가의 시계는 거꾸로 가는 것인지….  






전필수 증권부장 phils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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