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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공포영화의 종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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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공포영화의 종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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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되면 현실인지 소설(또는 영화)인지 헛갈린다. 꼬리를 무는 섬뜩한 사건들이 현실과 소설의 경계선을 지운다. 소설 같은 현실인가, 소설보다 더한 현실인가. TV프로그램 '세상에 이런 일이'가 형님, 하고 고개를 숙이는 기괴와 엽기와 공포들. 시리즈도 아니건만 장르별로 구색마저 갖췄다.


#1 공포= 재작년 12월 서울 방배동 어느 주택에서 미라가 발견됐다. 2007년 사망한 남자 시신이 썩지도 않았다. 남편이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믿는 아내의 '우둔한 방치'였다고 경찰은 판단했다. 무혐의 처분했다. 하지만 검찰 수사로 아내의 사기 행각이 발각됐다. 아내는 고위 공무원이었던 남편이 살아 있는 것처럼 꾸며 급여, 퇴직금, 퇴직연금 등 2억원이 넘는 돈을 챙겼다. 먹고 살기 위해서라고 아내는 항변했지만 고인(故人)에 대한 예우를 저버린 섬뜩한 범죄였다.


#2 엽기= 당초 알려진 피해자는 두 아들과 엄마였다. 목사인 남편, 역시 목사인 시아버지의 사주로 세 모자가 십수 년간 성노예로 살아왔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두 아들의 엄마는 인터넷에 폭로했다. 세상에 어찌 그럴 수 있느냐며 네티즌들은 부르르 떨었다. 사이비 목사 부자(父子)를 처벌하라는 목소리는 들끓었다. 그러나 TV 시사 프로그램의 보도로 엄마의 주장이 거짓임이 드러났다. 엄마의 배후에 돈을 노린 무속인도 있었던 엽기적인 반전이었다.


#3 기괴= '국가정보원 해킹 의혹'의 중심에 서 있던 국정원 직원이 자살했다. 국정원은 "자살한 직원이 삭제한 자료를 복구한 결과 국내 사찰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자니 '사고(思考)의 오류'가 발생한다. 그렇다면 그 직원은 '국민을 사찰하지 않았는데 국민을 사찰했다는 의심을 받자 국민을 사찰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삭제(그것도 쉽게 100% 복원시킬 수 있도록)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말인가.


일본 미스터리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말처럼 현실은 소설보다 싸구려에 질척질척하고 엽기적이다. 이제 웬만한 충격이 아니고서는 사람들을 극장이나 서점으로 불러모으기 어렵다. '여름=공포 영화' 공식이 깨진 지도 오래다. 영화 감독들은 '영화보다 더 공포스러운 현실'을 개탄하고 소설가들은 '소설보다 더 잔인한 현실'을 한탄한다. 소설 같은 현실에, 소설보다 더한 현실에 공포 영화와 미스터리 소설은 고개를 떨군다. 공포 창작자들은 실직의 위기에 내몰렸다. 공포 소비자들은 더위 식히려 극장 갈 일을 덜었다. 돈은 굳었다. 그러니 행복한가.  






이정일 금융부장 jaylee@asiae.co.kr<후소(後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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