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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21세기 종교개혁

시계아이콘읽는 시간53초

일을 보고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 광화문 근처를 지나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전단지를 하나 주면서 "○○의 하나님을 믿으세요"라고 말한다. 무슨 하나님이라고 하셨어요, 라고 물으니 '멸공'의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멸공의 하나님이라? 그냥 올까 하다가 천주교 영세를 받았지만 평소 성당에 잘 나가지도 않으면서 그럴 때는 꼭 교인 행세를 하고 싶어 하는 못된 버릇이 또 발동했다.

'멸'이라면 멸망시킨다는 말씀인데, 사랑의 하느님이 그렇게나 살벌한 분이실까요?"


돌아오면서 아, 우리의 기독교의 한 현실이 여기에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교국가'라고 할 정도로 우리나라는 종교인구 비율이 높다고 하는데 그러나 나는 진정한 의미의 종교가 없는 게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종교 없는 종교국가'인 것이다.


우리 사회의 종교의 과잉, 그러나 그건 실은 종교의 결핍인데,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그 현실을 떠올리면 신앙에 필요한 두 가지에 대한 생각으로 뻗친다. 나는 종교적 믿음을 단순화하자면 거기에는 두 가지, 즉 영성(靈性)과 지성이 함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영성이야 두 말할 나위도 없지만 영성은 지성의 바탕 위에 서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지성 없이는-단 이때 지성은 지식이나 학식이 아님은 물론이다. 무학(無學)이라도 지성적일 수 있으며, 반면 박사 학위를 서너 개 갖고 있는 사람이라도 매우 비지성적일 수 있는 것이다- 영성이 있기 힘들고, 영성 없이는 지성이 완성되지 않는다고 본다. 진정한 믿음은 (지성적) 의심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라고 한 뛰어난 신학자(폴 틸리히)도 있었다. 우리의 종교는 대체로 그런 점에서 반(反)지성, 비(非)지성이어서 비(非)영성인데, 그 비영성이 다시 반지성, 비지성을 부른다.


지금 우리 종교의 행태, 종교를 내세운 이들의 '비종교적' 행태는 본래는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인 측면이 크다. 우리 사회의 온갖 병리와 그늘이 종교를 통해 배출되는 것이다. 그러나 점점 오도된 종교가 문제의 결과가 아닌 원인이 돼 가고 있는 듯하다. 국민의 과반수 이상이 종교를 갖고 있다는 것이 우리 사회에 빛이라기보다는 어둠이며, 종교는 소금의 짠맛을 주기보다는 아편의 환각에 빠지게 하고 있다.


올해는 가톨릭에 일대 쇄신을 가져왔던 바티칸 2차 공의회의 폐막 50주년이다. 한국에도 그 공의회와 같은 '21세기 종교개혁'이 절실히 필요해 보인다.






이명재 논설위원 prome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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