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내 자식 내가 죽이겠다는데 왜 그러냐." 지난해 11월 전북의 한 유흥주점. 5살 아이가 A(43)씨에게 폭행을 당했다. 폭행의 주체는 아버지였다. 이유도 엉뚱했다.
자신과 새벽까지 유흥을 즐기던 여성 도우미를 다시 데려오지 않으면 아들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던 것이다. 철없는 아버지의 '황당 일탈' 사건은 결국 법의 심판대에 섰다.
A씨는 '법의 철퇴'를 맞았을까. 항소심 법원은 최근 그를 풀어줬다. A씨 부인이 선처를 호소하자 '집행유예' 판결을 내린 것이다. 가정폭력 사건의 특수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강력한 처벌만이 가족이 바라는 해법은 아니라는 얘기다. 자칫하면 가족관계가 해체될 수 있다는 우려는 현실적인 걱정이다. 이는 가정폭력을 감추고 문제는 반복되는 악순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다행스러운 점은 형사 처벌보다 피해자 치료와 재발방지에 초점을 둔 법적 장치가 마련돼 있다는 것이다. 바로 '가정보호사건'에 따른 처리다. 검찰과 법원은 처벌 대신에 접근행위·친권행위 제한 등 보호처분이 필요할 경우 가정보호사건으로 분류해 처리한다.
이런 가정보호사건은 급증하고 있다. 2011년 3000여건이던 것이 2013년 6000여건에 달했고, 올해는 1만건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가정폭력을 '4대 악(惡)'으로 규정한 이후 수사기관 태도가 달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남의 가정사'로 치부하던 과거의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가정보호사건 증가는 국민인식 변화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감추기보다 세상에 드러내 해법을 찾겠다는 태도변화라는 것이다.
'가정해체 방지'라는 정부의 방향설정은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다만 늘어나는 가정보호사건을 처리·관리할 인력 부족, 제도 정비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가정폭력은 '구호'로만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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