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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잔혹한 사법폭력 파헤친 이 책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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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 대필' 강기훈에 대한 국가폭력을 고발한다

그 잔혹한 사법폭력 파헤친 이 책이 나왔다 거짓말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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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재 논설위원] 2015년 5월 14일, 대법원은 이른바 '유서 대필 사건'의 강기훈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이 검찰의 항고를 기각함으로써 지난 24년간 동료의 죽음을 부추기고 자살을 도왔다는 '누명'을 쓰고 살아온 한 시민의 삶에 대한 명예회복, 최소한의 명예회복이 이뤄진 것이다.


 '거짓말 잔치'는 이 유서대필사건의 진실을 보여주기 위한 치밀한 기록이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너무도 많은 진술과 증언, 공방이 있었기에 그에 대한 책이 나왔다는 것이 특별할 게 없는 것인지는 모른다. 다만 강씨가 '법적으로' '완전히' 결백을 선고받은 시점에 맞춰 발간됐다는 점이 이 책에 대해 주목을 하게 만든다. 또 한 가지는 이 책이 극히 냉정하게 사실적으로 자료들을 통해, 자료들 속의 사실들이 갖는 힘을 통해 진실을 말하려 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 안재성은 한 청년을 파렴치한 유서대필자로 만든 사건의 이면을 시간의 흐름과 진행에 따라 최대한 객관적으로 분석해 꼼꼼하게 기록했다.
 안재성은 말한다.
 "엄정한 공정성을 위해, 이 사건으로 피해를 보게 된 강기훈과 주변인들이 겪었을 심정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았다. 중간 중간 나오는 놀랐다거나 침통했다거나 하는 심리묘사조차도 진술서에 기록된 그대로 옮긴 데 불과하다. 피해자의 고통을 내세워 동정을 구하는 것이 오히려 진실을 찾기 위한 노력에 대한 신뢰감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안재성은 이 책을 위해 A4용지 1만 쪽에 이르는, 경찰 조서와 재판 자료, 진실화해위원회 조서 등 방대한 분량의 공식기록을 비교, 분석했다.


 이 책이 자신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24년간 힘겨운 싸움을 벌여온, 그 과정에서 푸르른 청년에서 초로의 중년이 된 강기훈에게, 게다가 간암이라는 중병에 걸려 또 다른 사투를 벌이고 있는 그에게 조금이나마 위로나 보상이 될 수 있다면 다행이다. 물론 그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다. 어떤 걸작인들, 어떤 감동의 기록이든 죽음보다 더 죽음같은 삶을 살아온 그에게 어찌 진정한 위로나 보상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다만 우리는 그의 싸움, 그의 싸움을 둘러싼 진실을 통해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무엇이 강기훈을 '파렴치한'으로 만들었고, 도대체 우리 사회의 무엇이 이 무고한 젊은이를 지옥과도 같은 처지로 내모는 데 공모했으며, 그렇게 한 인간의 삶을 국가권력이 총동원돼 송두리째 파괴하는 동안에도 왜 우리 사회는 (최소한 외형상으로는) 건재했는지를 뼈아프게 돌아봐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민주주의 대한민국의 '법치주의'의 한 현실을 돌아봐야 할 것이다. 법치주의는 흔히 '법을 잘 지키는 준법'으로 얘기된다. 그러나 그건 법치주의에 대해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으면서도 가장 왜곡된 이해다. 법치주의는 권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권력에 '대한' 법의 통제인 것이다. 그것은 권력에 의한 자기자신에 대한 자제와 제어다. 권력이 스스로 자제하지 못한다고 보고 권력을 정밀하게 통제하는 법제를 갖추는 것이다. 그 자제와 통제가 결여된다면 그 권력은 권력이 아닌 '폭력'일 뿐이다. 어떤 조폭보다 위험한 폭력일 뿐이다.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의 '권력'과 '폭력'에 대한 구분을 단순화해 빌어서 말하자면 정당성과 절제가 없는 권력은 폭력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는 강기훈씨가 겪었던 고난의 기록에서 그 폭력이 얼마나 위험하게, 또 파렴치하게 행사되었는지를 봐야 한다.


 많은 정치학자들은 우리 민주주의의 한 문제점으로 '민주주의의 사법화' '정치의 사법화'를 제기한다. 즉 사회적 논의와 정치적 조정 및 합의를 통해 결정돼야 할 많은 중요사안들이 사법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민주주의의 위기 징후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러나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진짜 문제는 민주주의의 사법화가 아니라 그 사법권력(법원과 검찰)이 어떤 성격의 것이냐에 있다. 법률, 그리고 그 법률의 적용에 대한 최종판단을 하는 사법권력은 민주정에서 정의의 중요한 구현자다. 그러나 우리가 강기훈 사건에서 보게 되는 것은 그 정의의 권력이 정의의 이름으로 부정의를, 반(反)정의를 참으로 대담하게, 총력전을 다해 실현하려고 하는 집요한 시도였다.


 그 같은 공권력에 의한 폭력이 지배하는 사회, 그런 사회에 산다는 것은 공포다. 공포영화 이상의 공포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검찰과 법원의 전횡에 대한 공포만이 아니다. 우리는 강기훈씨 사건을 빗대면서 인용하는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이 국가권력과 사법부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한 사회의 양심, 지식인, 그 사회 모든 이들에게 던졌던 경고를 읽어야 한다.


 이번 최종 판결 후에 국가권력이나 사법부는 어떤 사과도 사죄도 없었다. 그들은 너무도 당당했다. 속된 말로 '잘 나가고 있는' 이 사건 관련자들(검찰과 법원)의 굳건한 자리는 흔들림이 없어 보인다. 우리는 그 같은 현실에서 우리 사회의 천국과 지옥을 본다. 어떤 이들에겐 이땅이 바로 천국이다. 아무리 잘못을 해도 사과할 필요가 없는 사회,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는 사회, 그 사회는 분명 그런 이들에겐 천국이리라. 그러나 그 천국은 어떤 '운 없는' 이들을 지옥, 이 지상의 지옥으로 내 몬다.


 그런데 더 끔찍한 지옥은 다른 데 있다. 그 불운한 이의 수난을 많은 이들이 담담하게 지켜보고 있는 모습, 그거야말로 진짜 지옥이다. 자신은 운 없는 이들이 떨어지는 지옥으로부터 안전하다고 믿는 이들의 방관적인 시선이야말로 진짜 지옥을 만들어낸다. 조경경관학에서는 아찔한 풍경을 안전한 위치에서 보면서 안도감을 느끼는 것을 '지배자의 시선'이라고 한다. 우리는 어떤가. 이 질문에 단호히 아니라고 할 수 없다면 그 누구도 '강기훈의 절규'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이명재 논설위원 pro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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