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간 누명 씌워놓고 출세가도…아무도 사과 안 해
대법원이 24년 만에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리는 '유서대필 사건'에 대한 무죄를 선고하면서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강기훈씨가 누명을 쓰고 24년 동안 고통 받고 민주화 운동 세력은 동지의 죽음마저 이용했다는 비판을 받는 동안 이 사건을 지휘했던 검사들과 재판을 맡았던 판사들은 출세가도를 달렸다. 2014년 서울고법에서 열렸던 재심 결심공판에서 강기훈씨는 일일이 이들의 이름을 열거했다.
강씨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동료 김기설씨가 1991년 5월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분신했을 때 유서를 대신 써주고 자살을 방조한 혐의로 기소돼 1992년 징역 3년 확정판결 받고 복역했다. 하지만 명지대생 강경대씨가 시위 도중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진 것에 대한 항의성 분신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위기에 몰린 정부가 '국면 전환용'으로 유서대필 사건을 조작했다는 의혹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당시 법무부 장관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다. 그는 이후 공천을 받아 15, 16, 17대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며 올해 2월까지 청와대 비서실장을 맡으며 정권의 2인자로 군림했다. 사건의 수사를 지휘한 사람은 강신욱 당시 서울지검 강력부장이다. 그는 이후 서울지검 2차장을 거쳐 서울고검장으로 승진했고 2000년부터 대법관을 지냈다. 2007년 박근혜 대선캠프에서 법률지원특보단장을 맡는 등 현 정권과 인연도 깊다.
사건 주임검사는 신상규 전 광주고검장으로 서울지검 3차장, 창원지검장, 광주지검장 등 요직을 거쳐 2009년 광주고검장을 마지막으로 검찰을 떠났으며 법무법인 동인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또 당시 검찰총장은 정구영 변호사, 서울지검장은 전재기 변호사였고 수사팀에는 안종택·박경순·윤석만·임철·송명석·남기춘·곽상도 검사가 속해 있었다. 남기춘 검사는 검사장을 지내고 변호사로 개업했으며 2012년에는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산하 클린정치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곽상도 검사 역시 2013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이름을 올렸고 현 정부에서 첫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냈다. 지금은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1991년 강씨에 대한 1심 재판을 맡은 서울형사지법 노원욱 부장판사는 변호사로 개업했고 2심을 맡은 서울고법의 임대화 부장판사는 2000년 특허법원장을 지낸 뒤 변호사로 활동했다. 상고심은 주심 박만호 대법관에 김상원·박우동·윤영철 대법관으로 구성된 재판부에서 결정됐는데 박만호 전 대법관은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을 지냈고 윤영철 전 대법관은 2000년 헌법재판소장으로 재직했다.
이와 함께 당시 강씨에 대한 비난 여론을 주도한 이들에 대한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1991년 박홍 서강대 총장은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고 발언했으며 김지하 시인은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고 조선일보에 기고했다. 이 사람들 중 24년 만의 무죄 판결 후 강씨에게 사죄한 이는 아직 없다.
온라인이슈팀 issu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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