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2일 오후 서울 시내 주요 보건소 현장 돌아 보니
[아시아경제 원다라 기자]2일 오후 서울 Y구 보건소. 한 20대 여성이 "내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ㆍ메르스)에 걸린 것 같다"며 찾아왔다. 보건소 측은 이 여성을 일반환자들 틈에서 대기하게 했다. 일반 직원이 다가서더니 구두진료인 문진만 하게 한 후 "메르스가 아니다"고 말하고 돌려보냈다.
정부의 안이한 메르스 대응 자세가 연일 도마에 오르고 있으나 서민들이 찾는 보건소 현장은 태평하기 짝이 없다. 이 보건소는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을 격리하지 않았다. 의사도 아닌 일반 직원이 판단을 내리고 모든 조치를 취했다. 중동방문 여부나 확진자 접촉 경험 등만 물어봤을 뿐이다. 방역당국이 '메르스 포비아' 확산의 주범 아니냐는 힐난이 나올 법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이날 기자가 방문한 주요 보건소는 허점 투성이었다. Y구 보건소에는 무엇보다 감염 의심 환자를 위한 전용 대기실과 화장실이 없었다. 실제 메르스에 감염된 환자가 방문해 진료를 받았을 경우 의료진ㆍ병원 직원ㆍ일반 환자ㆍ보호자 등에게 무차별적으로 전염될 수도 있는 환경이었다.
특히 Y구 보건소는 의사가 아닌 행정 직원이 메르스 환자를 문진하는 등 엉터리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Y구 보건소 측은 그 이유를 묻자 별다른 해명도 없이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에서 일반인에 배포하기 위해 제작했다는 전단지만 내놓았다.
C구 보건소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은 감염 의심 환자를 위한 대기실은 설치돼 있지만 검진 후 확진까지 6시간이나 대기하는 동안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 등 편의시설이 없어 일반 환자와 같이 이용하도록 돼 있었다.
또다른 강북의 S구 보건소는 감염 의심 환자로 하여금 보건소로 들어오지 말고 전화로 먼저 문의한 후 안내를 받도록 하고 전용 출입구ㆍ대기실을 갖춰 놓았다. 하지만 의심 환자들을 위한 화장실이 없어 일반 환자들과 같이 사용하고 있었다. 특히 S구 보건소 측은 "질병관리본부가 일절 (취재에) 대응하지 말라고 했다"며 촬영한 사진 삭제를 강요하는 등 폐쇄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제각각 엉터리 대응을 하게 된 것에 대해 한 보건소 관계자는 "확진환자가 사망해 시민들의 불안이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지역 사회로 전파되지 않고 특정 병원을 통해 전파되고 있다"며 "보건소에서 감염위험이 그렇게 높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불안감을 호소했다. C구 보건소에서 만난 이인숙(57ㆍ여)씨는 "치사율이 40%라고 하니 사스 때보다도 더 불안하다"면서 "메르스 환자와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있는 환경이라고 생각하면 허술하게 대응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요식업 허가 업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보건소를 찾았다는 김수동(42)씨는 "정부 대처 방안을 보면 병원이나 보건소를 아파도 잘 찾지 못할 것 같다"고 꼬집었다.
정부 당국의 사건 축소 의혹이 괴담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많았다. 이모(39ㆍ여)씨는 "어린이집에 보내는 아이 때문에 지역 보건소에 전화로 문의했지만 '알려줄 수 없다'는 대답만 들었다"며 "정부의 정보 통제 때문에 온라인에 떠도는 괴담이 그대로 현실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불안하다"고 호소했다.
원다라 기자 supermo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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