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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샘]그 폐선은 삼백 네 가지 어머니를 가졌다

시계아이콘01분 35초 소요

파란 침묵이 달팽이를 끌고 갔다.


손톱 밑에 별이 맞물린다. 식은 지붕을 지나가는 새들의 발소리를 듣는다. 물방울대신 물방울무늬 스커트가 흔들린다. 고양이가 밀어놓은 낮잠이 와서 발 아닌 달이 자주 붓는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하늘과 바다가 갈렸다. 뒷벽에는 기울어진 소녀들, 눈시울은 어느새 헐거워 덜컥 손가락 하나를 놓친다.


가장 긴 장마가 와서 만조에 초대된 영혼들, 포말과 노랑나비는 서로를 모른다. 새벽과 헤어지는 은어 떼가 입안을 헹구고 간다. 모래알에 마음이 생겨난다.

바람이 만진 타인의 삶이 이따금 꿈을 지우러 온다. 태중에서 가져온 암전을 꺼내 사용 중이다. 폐공장에서 허공이 분해되고 있다.


폐선은 삼백 네 가지 어머니를 가진 적이 있다.


-최형심의 '물 속의 요람'



이 시가 문득 쿵, 하고 가슴에 내려앉는다. 이렇게 조용한 언어떼가 있는가. 가만히 입을 닫은 시, 스케치 하듯 담담히 붓질해나간 이미지들은 어디선가 본 듯한 동영상으로 버퍼링되면서 무의식을 쿨럭거리게 한다. 어떤 아픈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왜 이렇게 아프지. 까닭도 없이 팔뚝에 힘이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까닭을 알 수 없었다. 마지막 귀절을 읽을 때까지 말이다. '폐선은 삼백 네 가지 어머니를 가진 적이 있다.' 삼백 넷이라는 숫자에 소스라치며 폐선이 가슴으로 침몰하는 듯한 착각을 느낀다. 세월호를 한번도 이야기 하지 않았고 팽목항을 입밖에 꺼내지도 않았기에, 저 삼백 넷의 주검과 그들을 가둔 폐선의 어머니는 서로를 껴안으려 더욱 소용돌이친다.


그제서야 놀라 자빠지듯 다시 시를 더듬어 읽는다. 아이들을 실은 달팽이집이었던 세월호를 끌고 들어간 파란 침묵의 표면적인 의미는 푸른 심연이겠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침묵이 말하는 것은 아이들의 비명을 잠기게 한 그 엄혹한 자연만이 아니라, 시퍼렇게 눈뜨고 살아있는 자들의 비겁한 침묵과, 푸른 색을 기표로 하는 정치적 결단의 주인공이 사는 집의 이미지까지도 넘나든다. 누가 달팽이를 끌고 갔는가. 그 파란 침묵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두번째 연은 적나라하여 소름이 돋기까지 한다. 손톱 밑, 귀, 스커트, 달. 이것은 물 속에 잠긴 아이들의 감관이 느낀 이미지들이다. 허우적거리느라 들어올려 무엇인가를 붙잡은 손의 그 손톱밑으로 아른거리는 별빛, 내려앉은 배의 큰 지붕 위에 흰 바다새들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는 귀. 그리고 보글거리며 돋아오르는 물방울들 사이로 친구의 물방울 치맛자락이 보이고, 그리고 평화로운 낮잠 속에 물에 비쳐 퉁퉁 부은 달이 보인다.


세번째 연은 참극의 바로 그 현장이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하늘과 바다가 갈리는 어이없는 운명과 손가락을 놓친 눈시울. 시가 무섭도록 제 몸을 떤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영혼들은 고요해졌다. 노랑 깃발을 달아놓은 사람들은 포말 속에 들어있는 영혼들을 알아보지 못한다. 새벽과 헤어지는 은어떼, 마음이 생겨나는 모래알. 이 미세한 것들의 아우성을 사람들은 모두 놓치고 만다.


다섯번째 연은, 그 세월호를 지우려는 자들의 무심한 폭력을 지켜본다. 태중에서 가져온 암전(비밀폰)은 맵고 아픈 풍자이다. 그리하여 허공을 분해하는 폐공장은 바로 이 나라일 것이다. 세월호 이후, 나는 이런 높고 아득하며 깊고 아픈 시를 본 적이 없다.


빈섬 이상국(시인ㆍ편집부장)


*시평을 더 깊이 읽으시려면 아시아경제 홈페이지의 시샘(asiae.co.kr)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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