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조윤선 청와대 정무수석의 사의는 정치권을 두번 놀라게 했다. '공무원연금개혁이 지지부진한데 책임을 진다'는 이유로 갑작스레 사의를 표명했다는 점이 하나고, 박근혜 대통령이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사표를 수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가 두번째다. 그가 박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점에서 사의 수용은 더욱 의외였다.
여권 수뇌부가 조 수석 사의 소식을 접한 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인 것도 무리는 아니다.
조 수석 사의를 놓고 다양한 추측이 쏟아지고 있지만 청와대가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당정청이 여야 합의안을 존중하는 것으로 이미 일단락 지었는데, 여야의 협상 재개 시점에 맞춰 주무 수석의 사표를 보란 듯이 일사천리로 처리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조 수석은 사퇴의 변에서 "기초연금, 심지어 증세문제까지 거론되는 것은 애초 공무원연금개혁의 취지와 맞지 않게 변했다"고 밝혔다. 결국 이번 협상에서 공무원연금개혁이라는 본래 과제에만 집중하라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문제는 청와대의 메시지 전달 과정이 세련되지 못하다는 점이다. 타이밍부터가 어색하다. 당정청 회동 직전, 아니면 20일 예정된 여야 협상 결과를 지켜본 후 사의를 수용했다면 그나마 납득하겠지만 협상을 앞두고 사표를 낸 것은 청와대의 의중을 가득 실었다는 의미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 차라리 내년 총선을 앞두고 새로운 스타일의 정무수석이 필요했다고 밝혔더라면 오히려 오해가 덜했을지 모른다.
더 큰 우려는 청와대의 서툰 메시지 전달 방식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지난 6일 본회의를 앞두고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명기 불가'라는 사소한 부분에 매달려 판을 엎었고, 지난달에는 이완구 국무총리 문제에 대한 사과 표명을 대통령 건강상의 이유로 사실상 거부하기도 했다.
전달 과정이 투박하다는 점은 결국 각종 억측과 오해로 연결된다. 그만큼 문제 해결을 위해 쏟아부어야 하는 에너지를 낭비할 수밖에 없다.
정치권에서는 이미 여당에 재량권을 부여한 것이라는 해석을 뒤집고 당청간 또 다시 주도권 다툼이 벌어진다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여당도 협상 준비 보다는 오해 확산을 막는데 급급한 모습이다. 청와대의 세련되지 못한 개입이 협상의 윤활유가 아니라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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