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철현 기자] 23일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책의 날'이다. 1616년 4월 23일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돈키호테'의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가 타계한 것이 이날을 세계 책의 날로 정한 연유다. 그런데 공교롭게 한날 세상을 떠난 이 위대한 작가들에게는 무덤을 둘러싸고 석연치 않은 얘기들이 퍼졌다는 공통점이 또 있다.
우선 셰익스피어의 무덤에 대한 얘기는 '셰익스피어 진위 논란'과 맞닿아 있다. 셰익스피어가 당대 다른 이의 필명이었다는 의혹이나 한 사람이 아닌 전문가 집단을 지칭한다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시골서 초등교육만 겨우 마쳤다고 알려진 극작가가 이런 걸작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라는 추정에 따른 것인데 구체적으로 프랜시스 베이컨, 크리스토퍼 말로 등의 후보군이 거론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셰익스피어의 진위를 의심하는 사람들은 그의 고향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에 있는 무덤도 가짜라고 여긴다. 한 번 파헤쳐 유골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겠지만 그의 묘비에는 그런 마음이 쏙 들어가게 하는 말이 적혀 있다. '이 뼈를 옮기는 자에게는 저주가 있으리라'. 한편 셰익스피어는 영국을 대표하는 왕과 위인들의 잠든 웨스터민스터사원에도 기념비가 있으니 말하자면 무덤이 두 개인 셈이다.
기록이 거의 없는 셰익스피어와 달리 세르반테스의 죽음은 비교적 정확하게 전해지고 있다. 그는 말년에 신앙생활에 전념하며 수도원에 들어가 살았는데 '돈키호테' 2부를 쓴 곳도 수도원이었다. 그리고 돈키호테가 완간된 이듬해인 1616년 수종증이 악화돼 69세를 일기로 숨을 거둔다.
세르반테스가 묻히고 싶었던 곳은 스페인 마드리드의 삼위일체 탁발수녀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무덤은 수녀원이 확장되고 수차례 재건축되면서 잊혀졌다. 그러다가 지난달 세르반테스의 유골을 발견했다는 발표가 나왔다. 발굴팀이 수녀원 지하에서 'MC'라고 적힌 관을 찾았는데 MC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의 첫 글자라는 것이다. 일그러진 왼팔 뼈와 총알에 손상된 가슴뼈, 치아 등도 수습됐다. 군인으로 복무했던 세르반테스는 레판토 해전에서 총을 맞았으며 이 때문에 평생 왼팔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이 유골도 진위 논란에 휩싸였다. 추정일 뿐 DNA 검사로 100% 세르반테스의 유골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비판도 나왔다. 지하 납골당에 뒤섞인 유골들 중에 한 조각이 세르반테스의 것일 가능성만을 가지고 떠들썩하게 발표를 하는 것은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셰익스피어의 고향처럼 수녀원을 관광지로 개발하려는 생각 때문 아니냐는 의심도 샀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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