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뉴욕=김근철 특파원] '강(强)달러' 시대가 글로벌 경제의 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다. 올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인상이 기정사실로 되면서 달러 강세는 예견돼 왔다. 미국 달러는 이미 지난해 10월 이후 10%나 상승한 상태다. 그러나 유럽중앙은행(ECB)이 매달 600억유로 규모의 양적완화를 결정한 이후 달러화 강세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고 강해지고 있어 시장을 당황시키고 있다.
지난 9일(현지시간) ECB가 매달 600억유로(72조4770억원) 규모의 양적완화에 나서자 머지않아 달러·유로 환율이 1대1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2002년 이후 13년 만의 역전 예상이다. 실제로 올해 초 1.2달러 선이었던 달러·유로 환율은 10일 뉴욕 외환시장에서 장중 1.0691달러까지 떨어졌다.
글로벌 경제는 이제 달러 초강세 시대에 생존하기 위한 생존 전략을 짜고 대비에 나서야 할 상황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메릴 린치의 데이비드 우 금리·환율 전략가는 9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달러·유로 환율이 1.10달러 아래로 내려간 것은 시장의 전망보다 더 우려되는 수준"이라면서 이 같은 달러 강세가 2013년 신흥국 통화 가치 급락 사태를 재현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나홀로 성장세를 즐기던 미국 경제도 예외가 될 수 없다. 10일 뉴욕증시가 급락했던 원인 중에는 강달러에 따른 미국 기업의 실적 악화에 대한 우려가 도사리고 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에 편입된 기업의 수익 40%는 미국 밖의 해외시장에서 창출되고 있어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해졌다.
제이슨 퍼먼 미국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도 전미 실물 경제 협회(NABE) 콘퍼런스에서의 연설을 통해 "강달러와 전 세계 다른 글로벌 국가들의 (낮은) 성장세로 인해 미국이 수출 분야에서 역풍을 맞고 있다"면서 "역풍은 미국 국내총생산(GDP)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강달러 시대는 이제 본격적으로 막을 올렸을 뿐이다. Fed의 금리인상이 가시권에 들어올 경우 금융시장은 더욱 요동칠 가능성이 많다. 월스트리트는 Fed가 오는 18일부터 이틀간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인상 이전에 인내심을 보인다'는 가이던스를 삭제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는 금리인상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와 준비가 공개적으로 진행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6일 발표된 미국의 실업률이 완전고용 수준인 5.5%까지 떨어지자 시장에선 빠르면 6월 FOMC에서 첫 번째 금리 인상이 나올 수 있다는 전망이 급부상했다. 금리인상은 Fed가 2008년부터 지속됐던 비전통적인 경기 부양 정책에서 긴축 정책으로의 선회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글로벌 금융시장에 넘쳐나던 값싼 달러 시대가 막을 내리고 신흥국으로 향했던 막대한 달러가 다시 미국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강달러로 야기된 글로벌 금융시장이 긴장이 해소되고 자리를 잡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 일각에선 최근 급작스러운 달러 강세가 Fed의 금리 인상 스케줄을 오히려 늦출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양적완화와 맞물린 달러 초강세로 인해 글로벌 경제는 물론 미국 경제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기 때문에 Fed가 금리인상을 섣불리 결정할 수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금리인상 결정이 9월 이후로 미뤄지더라도 강달러 시대는 어차피 지나가야 할 길이 됐다.
뉴욕=김근철 특파원 kckim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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