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투자원금 손실액만 손해, 일실이익 불인정"…138억→78억
[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 펀드 불완전판매로 투자자에게 손해를 입힌 금융투자회사에 해당 투자가 아니었으면 얻었을 기대수익(일실이익)까지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고수익을 노린 기관투자자의 리스크 투자시 자기 책임에도 무게를 둔 만큼 신중한 투자가 요망된다.
5일 금융감독원 및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14부(부장판사 정종관)는 지난달 29일 삼성생명이 SK증권과 산은자산운용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피고가 원고에 77억9321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SK증권은 자사 임직원의 불법행위에 따른 사용자책임, 산은자산운용의 경우 옛 간접투자자산 운용업법상 선관주의 의무 위반이 판결 사유라고 밝혔다.
항소심이 인정한 배상액은 앞서 1심이 정한 138억원보다 50억원 가량 줄어든 금액이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펀드 청산을 거치며 손해가 일부 줄어든 데다, 법원이 삼성생명이 주장한 일실이익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성생명은 SK증권이 2008년 선박업체 퍼스트쉽핑의 선박 매수자금 조달을 위해 연 7.4% 이상의 예상수익률을 제시하며 조성한 펀드에 200억원을 투자했고, 산은자산운용은 운용사로 참가했다. 그러나 펀드 설정 과정에서 퍼스트쉽핑이 SK증권에 내민 서류는 가짜였고 이에 삼성생명은 이미 지급된 이익분배금 등을 제외한 나머지 손해 172억원을 배상하라며 2010년 4월 소송을 내 이듬해 초 일부 승소했다. 쌍방 모두 항소해 항소심이 진행되는 동안 해당 펀드 청산금 지급 등으로 삼성생명은 청구액을 150억원으로 낮췄다.
삼성생명은 문제의 펀드 대신 다른 금융상품에 투자했더라면 얻었을 수익까지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1심과 달리 항소심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글로벌 경제위기와 해운업 불황으로 정상적인 선박펀드도 큰 손실을 내던 상황에서 안정적인 금융상품 수준의 수익률을 보장할 수 없는 고위험 투자였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삼성생명은 고위험의 대가로 얻어지는 고수익, 또는 고위험이 실현돼 초래되는 과다한 원본손실의 양 극단 사이에 수익률이 있으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을 뿐, 투자로 인해 평균 운용수익률이나 정기예금이율 상당의 수익 내지 투자 포트폴리오를 통한 평균 수익률이 개별 투자에 그대로 적용되리라는 건 알았거나 알 수 있었으리라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1심이 SK증권과 산은자산운용의 책임을 80%까지 인정한 것에 비해 항소심은 이를 60%로 제한하며 상대적으로 삼성생명의 책임을 무겁게 본 것도 배상액 감소의 원인이다. 재판부는 ▲전문적 지식과 투자경험을 갖춘 기관투자자로서 더욱 더 높은 주의를 기울이고 투자손실에 따른 책임을 부담해야하는 점 ▲삼성생명이 펀드 설정 전후 퍼스트쉽핑과 선박금융구조 설계 자문용역을 맺었던 점 등을 고려했다.
한편 재판부는 SK증권과 산은자산운용이 앞서 1심 패소 뒤 삼성생명에 지급한 가지급금 가운데 배상액에서 제외된 몫은 이자를 더해 돌려받도록 했다.
정준영 기자 foxfur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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