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롱환자'나 '나이롱신자'라는 말이 있다. 가짜 환자, 엉터리 신자를 이른 것이다. 20세기 최고의 발명품 가운데 하나인 '나일론'을 천연섬유가 아니라 해서, 진짜가 아닌 가짜라는 뜻으로 사용한 예다. 인간이 진짜 천연섬유처럼 만든 '짝퉁'섬유라는 인식이 깔려있는 어법이었다. 그러나 나일론은 결코 가짜도 짝퉁도 아니다.
인조섬유가 등장한 것은 1889년 프랑스의 샤르도네(Chardonnet)가 목재펄프로 레이온을 개발하면서부터였다. 그러나 화학적 합성을 통한 섬유 개발은 1938년, 미국 듀폰(Dupont)사의 화학자 커러더즈(Carothers)에 의해 만들어진 나일론이 최초다.
개발 당시에는 칫솔모 같은 생활용품으로 대중에게 다가왔고, 섬유로서는 스타킹이 출발이었다. "석탄, 물, 그리고 공기가 당신의 몸을 감싼다"는 광고문과 함께 1940년 나일론 스타킹은 판매되기 시작했다. 여성이 종아리를 드러내기 시작하던 1925년경 실크스타킹은 신고 나가기도 전에 해질 정도로 약했다.
그러나 나일론스타킹은 질기고 탄력성 있고 아름다웠다. 당시 실크스타킹보다 두 배나 비쌌지만 첫날 동이 날 정도로 불티나게 팔렸다. 덕분에 듀폰사는 대박을 터뜨렸다. 세계 제2차 대전 때는 낙하산, 텐트, 밧줄 같은 군사용품까지 나일론으로 만들었다. 전쟁으로 군수품이 부족해지자 미국에서는 나일론 스타킹의 판매가 제한됐고 급기야 여성들이 자신들의 스타킹을 녹여서 군용으로 사용하도록 앞 다퉈 내놓기도 하였다.
이후 나일론은 발전을 거듭하며 종류와 용도가 다양해졌다. 강철보다 강도가 5배나 높은 제품이 나오기도 했다. 플라스틱 바가지에서부터 고급 파티복, 가전제품ㆍ자동차 등 산업 전반으로 용도를 넓혀가고 있다. 의류에서의 혁명은 물론 산업현장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귀하신 몸이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일론으로부터 시작된 화학섬유는 폴리에스테르 같은 또 다른 합성섬유 개발의 시초가 됐다. 뒤이어 아크릴, 폴리우레탄, 올레핀, 폴리비닐알콜, 폴리염화비닐 섬유 등 수없이 많은 새로운 섬유들이 생겨났다.
나일론을 비롯해 이렇게 개발된 합성섬유(이른바 가짜 섬유)들은 천연섬유보다 우수한 성질로 우리의 삶을 편리하고 윤택하게 돕고 있다. 물론 환경문제 같은 풀어야할 과제도 있지만, 대량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싼 값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도 화학섬유만의 장점이다. 그런 점에서 나일론이 '나이롱환자'나 '나이롱신자' 같은 가짜의 개념으로 통용된다는 것은 나일론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가짜지만 '유익한 가짜'다. 유익한 가짜는 가짜라 하지 않는다. '신제품'이다.
2014년은 비극의 한해였던 것 같다. 60년 전 갑오년의 격동이 이 땅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찾아내는 몸부림이었다면 지난해의 비극은 가짜와 짝퉁들이 빚어낸 참사들이었다. 가짜와 짝퉁들은 마피아 천국을 만들면서 정국도 뒤흔들었다. 이것들의 공통점은 국민들의 눈과 귀를 속이는 해악을 끼치면서 참으로 무익했다는 점이다.
2015년이 밝았다. 올 해에는 나일론 같은 유익한 가짜가 무수히 쏟아져 나오기를 기대한다.
송명견 동덕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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