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동차 업계, 내수침체·수출둔화 이중고…중국·대만 등 통화 절상 제한할 듯
[아시아경제 조목인 기자]아시아 금융시장에 엔저 공포가 불어 닥치고 있다.
미국 경제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은 아시아 통화 가운데 한국의 원화가 엔저에 가장 취약할 것으로 3일(현지시간) 예상했다. 특히 한국 자동차 업계의 부진이 가시화할 듯하다.
3일 엔화 가치는 달러당 114.22엔까지 떨어졌다. 엔화 가치가 지난주 3.9% 급락한 데 이어 이날 1.5% 더 급락한 것이다. 달러·엔 환율이 114엔대를 돌파한 것은 2007년 이후 처음이다. 그만큼 엔화 하락 속도가 가파르다는 뜻이다.
◆한국 충격 아시아 1위= 저널은 원화, 대만달러, 싱가포르달러가 엔저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엔화 가치 하락 속도가 빨라지면서 고금리를 노린 투기자금이 몰릴 것으로 보이는 인도·인도네시아·태국 역시 통화 강세가 예상된다. 향후 엔화와 아시아 통화 간 격차도 더 벌어질 것이다.
저널은 여러 면에서 일본과 경쟁 관계에 있는 한국 원화의 충격이 클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올해 들어 이미 엔저로 고전하고 있는 한국 자동차 업계의 시름이 깊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전날 한국 증시에서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주가가 각각 5%대 급락세를 보인 것도 '엔저 공포'가 크다는 뜻이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주가는 올해 들어 지금까지 각각 32.3%, 12.3% 하락했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최대 수출시장인 미국에서 점유율을 일본 자동차 업체들에 빼앗기고 있다. 도요타자동차는 미국 내 신차 구매자들에게 제공하던 인센티브를 당초보다 26% 오른 차량 당 2400달러(약 257만6640원)로 조정했다. 닛산, 혼다 역시 인센티브를 줄줄이 올려 잡고 있다.
노무라 증권의 엔젤라 홍 애널리스트는 "작년까지만 해도 일본 업체들은 신차를 출시할 때 높은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미국 수요가 살아나지 않으면서 올해 들어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가격 할인, 인센티브 제공 등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는 물론 엔화의 지속적 약세에 힘입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저널은 한국의 철강업계와 함께 전자산업도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 분야에서도 한국은 일본과 경쟁 관계에 있다.
달러 강세가 이어지면서 수입물가 상승, 내수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여기에 엔저로 해외시장까지 일본 업체들에 점령당하면서 한국 기업들은 2중고에 시달릴 가능성이 있다.
영국 투자은행(IB) 바클레이스는 한국·중국·대만 같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경쟁력 잃지 않기 위해 경상수지 흑자에도 통화가치 절상을 제한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엔화 추가 하락 불가피= 시장에서는 이미 엔화 추가 약세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달러·엔 환율은 이미 블룸버그통신의 지난 6월 전망치인 112엔을 단숨에 넘어섰다.
미 투자기관 퍼시픽 인베스트먼트의 스콧 마더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일본이 인플레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일본 중앙은행(BOJ)의 이번 양적완화 조치가 끝이 아닐 것"이라면서 "BOJ는 투자자들의 예상보다 조금 더 빨리 움직인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많은 전문가는 달러·엔 환율이 연말까지 115엔으로 치솟으리라 내다봤다. 호주뉴질랜드은행(ANZ)의 쿤 고 외환 전략가는 "내년까지 엔화가 달러당 120엔으로 오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BOJ가 이번 양적완화 정책을 발표하기 전에는 2016년까지 달러당 115엔을 예상했었다.
그러나 미 경제 매체 CNBC는 엔저 가속화에 따른 일본 주식시장 상승이 근본적으로 일본의 디플레이션 탈출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고 분석했다.
조목인 기자 cmi072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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