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뉴욕=김근철 특파원] 뉴욕에 있는 한국 특파원들도 반기문 유엔(UN) 사무총장을 만날 기회가 흔치는 않다. 세계최대 국제기구인 유엔의 수장으로서 반 총장은 하루 24시간, 1년 열두달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1년의 절반은 현안이 발생한 국가나 국제회의에 참석해야한다. 2007년 1월 취임이후 해외 출장거리만 320만㎞에 이른다고한다.
물리적인 제약이 아니라도 반 총장은 한국 언론과의 접촉에 굉장히 조심스럽다. 지금은 '한국의 반기문'이라기보다는 '유엔의 얼굴이자 일꾼'이어야하는 직분에 충실하는데 치중하고 있다는 것이 주변의 설명이다. 수긍이 가는 처신이다.
여기에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자칫 언론 접촉과정에서 '차기 대권론' 등이 불거지는 것을 미리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간혹 특파원들과의 편한 자리가 마련돼도 사전에 반드시 '비보도 전제'라는 딱지가 붙기 마련이다. 그런 자리에서 한국 정치나 차기 대권과 관련된 질문이나 언급이 나와도 반 총장은 동문서답(東問西答)하며 화제를 돌리곤한다. 한국 정치나 2016년 대선과는 철저히 거리두기 행보다. 하지만 "내가 지금 정치하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은 종종 했어도 "대선에 출마하는 일은 결단코 없다"고 잘라 말한 적도 없다. 긍정도 부정도 않는 'NCND'라 봐야할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의 여의도 주변에선 개헌론에 대한 논의가 무르익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함구령을 내려 여권내 논의를 차단하고 있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개헌 필요성에 공감하고 이를 추진하려는 세력과 주장의 흐름을 막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둑이 터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개헌에 대한 구상은 아직 천차만별이다. 그래도 한가지 핵심 가치는 공유한다. '대통령 권한의 분산'이다. 현행 헌법상 규정된 제왕적 대통령제의 병폐를 이제 분권을 통해 고쳐야한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정치권에선 '분권형 대통령제'에 대한 연구와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여의도에서 멀리 떨어져 뉴욕에 머물고 있는 반 총장에게 이는 어쩌면 최상의 카드가 될 수 있다. 흔히 '반기문 대권론'의 가장 큰 약점은 국내 정치기반과 대권의지의 부재가 꼽힌다. 하지만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이 이뤄진다면 이같은 고민과 약점이 상당부분 해소된다. 골치아픈 여의도 정치와 내치(內治)의 상당부분은 분권형 대통령의 몫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임총리든, 여당 대표가 떠안게 된다. 대신 이와 초연하게 대한민국을 대표하고, 통일과 외교에 전념하는 대통령이라면 '유엔사무총장 반기문'의 경쟁력은 한층 돋보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권내 친박계 모임인 '국가경쟁력 포럼'에서 지난 달 29일 반기문 차기대권주자설이 언급됐다는 점은 흥미롭다. 계보내 차기 대권주자가 마땅치 않은 친박계로선 '외부영입'을 통해서라도 집권연장 준비를 해야할 처지다. 이경우 레임덕을 우려한 청와대의 '개헌 함구령'과의 교통정리 시기와 방법도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2016년 말 퇴임하는 반 총장이 2017년 12월 대통령 선거 투표용지에 이름을 올리게될 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 정치권이 차기 대선 경쟁으로 무게중심을 이동하면 점차 무시못할 변수가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니까.
뉴욕=김근철 특파원 kckim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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