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블룸버그 통신은 16일(현지시간) '끔찍했던 드라기 발언이 유럽 증시를 11% 떨어뜨렸다(Nightmare Draghi Speech Sends European Equities Down 11%)'고 보도했다.
블룸버그가 문제 삼은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의 발언은 지난 2일 ECB 통화정책회의에서의 발언을 뜻한다. 11%는 혼돈에 빠진 그리스 아테네종합지수의 지난 14~15일 이틀 간의 하락률이다.
드라기는 지난 2일 통화정책회의에서 자신이 언급했던 ECB판 양적완화 세부안(?)을 공개했다.
앞서 9월 통화정책회의에서 드라기는 커버드본드, 자산유동화증권(ABS) 매입을 뼈대로 한 ECB판 양적완화에 나설 것이라며 세부안을 10월에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당시 드라기는 ECB의 보유 자산 규모를 역대 최대 수준이었던 2012년 수준까지 늘리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ECB의 보유 자산은 2조유로 수준이고 드라기가 언급했던 2012년 초 ECB의 보유 자산은 3조1000억유로 정도였다. 시장에서는 ECB가 최소 1조유로 이상 자산 매입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드라기가 10월에 공개하겠다고 밝힌 세부안은 최소 1조유로 이상의 명확한 수치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드라기는 시장의 기대감을 배신했다. 10월 회의에서 드라기는 자산 매입 규모를 정확히 밝히지 않았고 되레 투자자들이 ECB의 보유 자산 숫자에 지나치게 관심을 둬서는 안 된다고까지 말했다.
시장에서는 세부안은 없었고 드라기가 9월 회의 발언을 재방송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최소 1조유로 이상을 기대했는데 아예 1조유로도 안 될 것이라는 비관론이 대두됐다. 옌스 바이트만 분데스방크(독일 중앙은행) 총재 등 다른 ECB 집행위원들이 드라기의 양적완화에 반대해 드라기가 강하게 자산매입 의지를 드러내지 못 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배경이야 어쨋든 드라기의 발언은 기대했던만큼 자산 매입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을 시장에 심어줬다.
그냥 불안감으로만 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공개된 독일 8월 경제지표가 극도의 부진을 보이면서 불안감은 공포로 바뀌었다. ECB 자산 매입에 대한 실망감은 투자자들 입장에서 비빌 언덕이 없어졌다는 의미였다. 이는 저가 매수 심리를 실종시켰다. 매도장에서 저가 매수 심리 실종은 투매로 이어졌다.
그리스가 주요 표적이 됐다. 그리스 정부가 구제금융 조기 졸업을 꾀하고 있다는 사실은 되레 그리스 증시를 투매의 먹잇감으로 던져놓은 결과를 낳았다.
자산운용사 레일앤씨에의 "드라기의 최근 발언은 시장에 공포를 안겨줬다"며 "지난 몇 일간 시장의 충격이 매우 컸고 주식시장이 이번 충격에서 빠르게 회복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16일 제임스 불라드 미국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총재의 발언은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으로 보인다. 그는 최근의 경기 불안을 감안해 이달 말 예정된 3차 양적완화의 종료를 연기하는 방안이 논의될 수 있다고 밝혔다.
불라드의 발언으로 미국이 실제 양료완화 종료를 연기할 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적어도 28~29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전까지 투자자들은 기대감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저가 매수 심리가 살아나면서 최근 빈발했던 투매 분위기는 잦아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날 미국 스탠더드앤푸어스(S&P500) 지수의 저가는 전일 대비 1.47% 하락이었으나 종가는 0.01% 상승이었다. 투매 분위기가 이어지는듯 했으나 저가는 개장 1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확인됐고 이후 장중 강력한 반등장이 나타났다.
그리스 아테네종합지수는 3일 연속 급락해 여전히 불안했다. 하지만 하락률은 2.22%에 불과(?)했다. 지난 2거래일 동안 하락률이 각각 5.70%, 6.25%였던 점을 감안하면 절반 이하로 줄어든 셈이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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