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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도 못 읽을 대한민국 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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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조사 사용·일본식 표현 등 60여곳서 엉터리 국어

[아시아경제 박준용 기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중략)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헌법 전문. '전통에'는 조사 사용의 잘못으로 '전통으로'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부정확한 외래어로 '자유민주주의'로 고쳐야 함.)


헌법 조문이 문장이 길거나 일본식 표현이 많은 등 읽기 어려운 문장이 많다는 분석이 나왔다. 8일 김문현 헌법재판연구원장(전 이화여대 로스쿨 교수)이 발표한 '헌법분야의 법률용어 및 법률문장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에 따르면 헌법 조문은 어색하거나 부정확한 표현 10곳, 일본용어ㆍ일본식 표현 표현 32곳, 불필요한 한자어 21곳 등 문제투성이였다.

김 연구원장은 헌법용어와 문장의 문제점을 세 가지로 지적했다. 첫째 불필요하고 어려운 한자어의 사용이다. 일상생활에서 잘 쓰지 않는 한자어가 많다는 것. '부당한 장기화 또는 기망'(제12조 7항),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헌법전문)', '대통령이 궐위한 때(68조 2항)'등의 표현은 읽는 사람이 뜻을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김 연구원장은 '기망'을 '속임'으로, '각인'을 '각 개인', '궐위'를 '자리가 빈'으로 풀어 써야한다고 지적했다.


일본용어를 쓰거나 일본식 표현을 한 곳도 많았다. '영해 및 접속수역법'은 일본용어를 따른 것으로 '영해 및 인접수역법'으로 고쳐야 한다고 지적됐다.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11조 2항)'는 조항처럼 필요 없는 곳에 '이를'을 쓴 경우도 많았다. 이런 형태는 일본식 어투에서 온 것이다.

외래어의 어색한 번역도 있었다. '민주적 기본질서(4조)'등 굳이 사용할 필요가 없는데도 '적'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김 연구원장은 자유민주주의, 민주주의의 기본원칙 등으로 순화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 외에도 대응하는 단어나 문구가 잘못되거나, 문장이 길고 조사사용이 잘못된 경우, 자동사를 타동사로 쓴 경우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렇게 헌법 조문의 국어 사용이 부실하게 된 이유는 헌법 제정에 참여한 사람들이 대부분 일본식 법학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또 서구의 제도가 일본을 통해 들어온 탓도 있다. 김 연구원장은 "서구의 법제도를 일본을 통해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우리 고유의 전래적 언어나 표현과는 거리가 있는 내용들이 헌법에 들어가게 됐다"고 했다.


모든 법의 기본이 되는 헌법이 읽기 어렵도록 돼 있지만 이를 고치기는 쉽지 않다. 용어 수정도 '개헌'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개헌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한 뒤 국민투표에서 유권자 과반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 찬성이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법제처가 지난 6월부터 법령 전수조사를 해 법률용어 개정에 나서고 있지만 최고법인 헌법은 이와 동떨어져 있는 셈이다.




박준용 기자 juneyo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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