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윤재 기자]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ㆍ중앙은행총재 회의, G20 정상회의, 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 등 해외 각지를 쫓아다닌 것만 꼬박 5년. 최근 우리나라가 국제무대에서 돋보이는 성과를 보인 데에 한 사람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주인공은 은성수 기획재정부 국제경제관리관(차관보). 2010년 국제금융정책관(국장급)을 시작으로 국제금융국장, 국제금융정책국장, 국제경제관리관을 잇따라 역임하면서 내리 5년 동안 쉴 틈 없이 국제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가 국제 경제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선수'로 나선 때는 바로 우리나라가 국제 무대에서 괄목할 만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할 때였다.
2010년 그가 국제 무대에 발을 내디뎠을 때 서울에서 열린 G20에서는 'G20이 세계 경제 문제를 다루는 최상위 포럼'이라는 내용을 담은 서울 선언이 나왔고 신흥국의 비중을 늘리는 IMF 쿼터 개혁도 이뤄졌다. 이후 G20, 국제통화금융위원회(IMFC) 등 경제 문제를 다루는 주요 국제 회의에서 우리나라는 이슈를 주도하는 나라가 됐다.
지난해 러시아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회의에서는 현오석 전 부총리는 '역파급효과(Reverse Spillover)'라는 이슈로 주요 국가들의 시선을 집중시켰고 지난달 호주 G20 재무장관회의에서 최경환 부총리가 이력효과(Hysteresis Effect)와 소심의 함정(The Timidity Trap) 이라는 이론을 통해 세계 경제의 과감한 정책 대응을 해야한다는 점을 강조해 각국의 공감을 얻었다.
특히 그의 물밑 노력으로 우리 대통령이나 부총리가 국제 무대에서 기조 연설을 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다른 나라에 앞서 우리나라 대표가 발언을 하면서 다른 국가의 동조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국제 무대에서 우리가 이슈를 주도한다는 인상을 심을 수 있었던 배경이다.
은 차관보의 숨은 노력이 돋보인 결과물로 그의 두터운 글로벌 인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가 이처럼 탄탄한 인맥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 회의장 안팎에서도 주요국 재무부 관계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을 방문하는 주요국 재무부 관계자들을 업무 뒤 저녁 만찬으로 초대해 성심껏 대접했다. 단순히 업무의 대상으로 대하기보다 '친구'라는 생각을 갖고 주요국의 공무원들과 스킨십을 하면서 끈끈한 정(情)을 쌓은 것이다.
기재부 한 관계자는 "주요 회의에서 발언의 우선순위 등을 정하는 일은 공식적인 경로를 통하기보다는 사적인 경로로 정해지기도 하는데 은 차관보와 정을 쌓은 외국 관료들이 종종 호의를 베풀었다"고 귀띔했다.
그런 그가 조만간 기재부 자리를 잠시 떠나 세계은행(WB) 이사로 이동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지난달 있었던 호주 G20 재무장관회의에서 그는 후배들에게 날카로운 시선으로 지적을 아끼지 않았다. 은 차관보는 지난달 G20 재무장관회의를 마친뒤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국제무대의 다양한 경험을 가진 후배들이 많지 않아 일부러 잔소리를 더 많이 하고 후배들을 다그치면서 회의를 준비했다"면서 "기존의 네트워크를 잘 살려서 후배들이 국제무대에서 더 큰 활약을 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런 노하우 전수는 이달 8일로 예정된 IMFㆍWB 연차총회가 마지막이다. 은 차관보는 "국제적으로 훌륭한 분들을 만나 영광스러웠다"면서 "세계 경제에 일조할 수 있었던 것이 기쁨이었다"고 전했다.
세종=이윤재 기자 gal-ru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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