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경기 고양 일산문화공원에서 열린 막걸리축제장을 찾았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막걸리들을 한자리에서, 그것도 공짜로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어디 흔하겠는가. 일 년에 한 번뿐인 호기다. 축제장 뒤편에 전이며 순대며 홍어무침까지 5000~1만원 안팎의 안주를 파는 먹을거리 장터까지 있으니 맞춤이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물론이고 젊은 연인들, 외국인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영락없는 잔칫집 분위기다.
민간에서 쌀 소비를 촉진하고 막걸리를 널리 알린다는 취지로 시작한 막걸리축제는 올해로 열두 번째다. 제주도 등 전국의 45개 업체에서 120여종류를 선보였다. 쌀 막걸리 외에 울금, 쑥, 유자, 검은콩, 군밤, 한라봉, 블루베리, 토마토 막걸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알코올 함량도 6도뿐 아니라 8도, 12도, 14도에 감미료를 섞지 않은 값이 2만원 하는 막걸리도 있었다. 깔끔한 디자인의 유리병 등 고급스러운 용기도 눈에 들어왔다.
막걸리는 열량도 적고 식이섬유, 유산균 등이 풍부한 건강식품으로 알려지면서 2000년대 후반 크게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요즘은 예전만 못하다. 윤주한 막걸리축제위원회 회장은 "막걸리 시장이 주춤하고, 숨 고르기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말이 숨 고르기지 추락하고 있다는 게 맞을 듯싶다. 그도 그럴 것이 막걸리의 국내 소비와 수출은 2011년을 정점으로 3년째 가파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막걸리 출하량은 2009년 26만㎘에서 2011년 46만㎘로 급증했다. 매출액도 2925억원에서 5075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2000년대 초반과 비교하면 5배 이상 성장했다. 하지만 막걸리 열풍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2012년 45만㎘, 2013년 38만㎘로 계속 하향세다. 올해도 7월까지 출하량이 22만㎘ 정도에 그쳤다.
한류 바람을 타고 기세등등했던 수출도 마찬가지다. 올 8월까지 1044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7% 줄었다. 2011년 전년 대비 176.2% 급증한 5274만달러로 최고를 기록한 이후 2012년 3689만달러(-30.0%), 2013년 1886만달러(-48.9%)로 급감했다. 최대 수요처인 일본의 감소 영향이 컸다. 8월 기준 대일 수출액은 643만달러로 전년 동기에 비해 32.3%나 줄었다. 막걸리 수출의 대일 비중은 2011년 91.8%에서 지난해 72.2%로 떨어졌다.
시장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막걸리업체 870여곳 중 상위 10여곳을 제외하면 대부분 자본력이 부족한 영세업체들이다. 소비자들의 취향 변화와 수입 맥주, 와인, 사케의 공세에 맞설 제품 개발과 마케팅에 투자할 여력이 부족한 현실이다. 싸구려라는 인식도 여전한 걸림돌이다. 수출 감소는 일본 소비자의 무알콜 음료 선호, 엔저, 반한감정 고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한다.
막걸리 열풍을 되살리려면 품질 향상과 특화전략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쌀 막걸리 외에 젊은층, 여성, 외국인 등이 선호하는 제품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축제에 나온 다양한 재료를 이용한 막걸리들은 그런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맥주 맛 막걸리, 도수를 3도로 낮춘 것 등도 그렇다. 일본 위주의 수출 시장 다변화도 중요하다. 올해도 30%의 수출 증가세를 보이는 등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는 중국과 새로운 시장으로 떠오른 동남아시아 공략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국민 관심도 힘이 될 것이다. 10월 마지막 주 목요일은 햅쌀 막걸리를 선보이는 '막걸리의 날'이다. 올해는 네 번째로 30일이 그날이다. 최근 막걸리에 항암물질인 스쿠알렌이 맥주나 와인보다 최고 200배나 많이 함유돼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적당히 마시면 약이 되는 막걸리, 막걸리의 날에 한 잔 어떠신가!
어경선 논설위원 euhk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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