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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에 실린 공동체의 흔적, 그게 민요예요"

시계아이콘읽는 시간1분 58초

20년간 민요 연구해온 최상일 프로듀서

"가락에 실린 공동체의 흔적, 그게 민요예요" 최상일 피디[사진=백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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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요에 담겨있는 옛 시절의 정서
우리사회 문제 해결 도움될 것
명절에 모여앉아 민요불렀으면

[아시아경제 박준용 기자, 백소아 기자]옛날 전라남도의 바닷가 마을에서는 사람이 쉬이 죽었다. '만선'을 기대하며 출항한 어부가 돌아오지 못하면 아내들은 홀로 남겨졌다. 전남 할머니는 이 한을 담아 울면서 민요 '흥글타령'을 부른다. 한 할머니가 '흥글, 흥글'을 시작하면 옆에 있던 이도 따라 '흥글, 흥글' 한다. 결국 떼지어 노래한다. 그리고 같이 운다.


21일 서울 상암동 MBC 라디오국에서 만난 최상일 프로듀서(PD)는 '흥글타령'이야기를 해주며 "예전에는 더 행복했던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삭막한 사회가 됐는지 생각해보라"고 했다. 갸우뚱하는 기자에게 그가 내놓은 답은 '공동체'다. 그는 "예전에는 부락이 장터와 가깝지 않았다. 사고파는 것을 잘 못하게 되니 자연히 가진 것을 나눠 먹게 된다. 그래서 이웃끼리 가족처럼 가깝게 지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그렇게 사라진 우리의 옛 공동체의 흔적이 가장 잘 나타나는 것이 민요다"고 말했다.


자신의 청장년기를 바쳐 민요에 매달려 온 그는 요즘 지난 20년간의 민요 수집과 연구 작업의 결과물들을 정리하고 있다. 올해 57세로 현직 은퇴를 눈앞에 두고 있는 그는 "민요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생각하면 앞으로도 할 일이 많다"면서 민요를 비롯한 전통음악을 기록하고 알리는 작업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한다. '우리의 옛 시절의 정서'에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를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는 그다.


그가 처음 민요에 끌린 것도 '사라진 시절'에 대한 향수 때문이다. 최 PD는 1950년대만 해도 농촌이었던 경기도 여주에서 나고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가락'을 알았다. 풍물의 악기를 잘 다루고 노래와 춤도 즐겼다. 풍물소리 곁에서 자란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서울로 이사왔는데 입시에 쪼들려 힘이 들었다. 어릴 때의 기억이 좋아서 민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다"고 했다.


막연한 관심 정도에 그쳤던 민요는 우연한 계기로 그의 삶 자체가 됐다.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했던 그는 '전력' 때문에 라디오국 레코드실로 발령이 났다. 최 PD는 "피디로 입사하고 난 몇개월 뒤에 회사에서 내 학생운동 '전과'를 알게 됐고 그래서 한직이라고 할 수 있었던 레코드실로 발령났지만 오히려 시각적인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내 성향과도 맞았다"고 한다. 주로 음악방송을 맡던 그는 '민요' 관련 방송을 해 보고 싶었다. 방송국에 요청했지만 답이 오지 않았다. 80년대 후반 '방송민주화'바람이 불면서 비로소 <한국민요대전,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를 시작할 수 있었다.


민요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보니 상황은 더 열악했다. "시원찮았다. 하고 싶은 것이 많은데 자료는 없었다"느낀 그는 "내가 떠맡아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급했다. 전통민요가 전승된 마을은 산업화하며 급변하고 있었다. 민요를 부르는 이도 고령이었다.


그는 전국 곳곳의 벽촌을 샅샅이 찾아 다녔다. "백두대간을 한번 훑었다"고 할 정도다. 산간지역, 오지일 수록 전통문화가 많이 남아있었다. 최 PD는 민요에 깃든 사연과 각 지역의 기질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오지기행은 2008년 11월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20여년간이나 계속됐다.


"가락에 실린 공동체의 흔적, 그게 민요예요" '민요전문가' 최상일 MBC 프로듀서[사진=백소아 기자]



그는 "지역마다 같은 민요라도 차이가 있다"고 했다. 영남지역의 민요는 목청껏 부르는 남성적인 것이 많다. 노총각들이 나무를 하며 부르는 '어사용'이 대표적이다. 까마귀에게 자신의 외로움을 호소하며 목청을 높인다. 호남지역은 섬세하고 기교가 있다. 곡창지대라 풍요로웠기에 섬세하다. 경기도, 충청도는 풍미가 있고, 강원도는 비슷하면서 또 다른 식이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곳과 민요로 강원도 정선과 '아라리'를 꼽는다.


"정선의 산골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민요 '아라리'를 참 잘하셨어요. 그분은 글만 읽고 손에 흙을 묻혀보지 않는 남편을 만나 온갖 고초를 겪었어요. 감자도 같이 캐서 먹으면서 하루 종일 이야기했죠. 가난해서 자식들 공부를 못 시켰던 이야기 등 사연을 말하면서 도중에 노래를 섞는데 이야기와 노래가 하나가 되는 거예요. '나는 죽으면 공동묘지에 묻지 말고, 은행 한복판에 묻어 달라 돈 구경이나 하게'라는 노래를 만들어서 부르시기도 했어요. 할머니가 자신의 노래를 직접 들어보고 싶어 테이프에 녹음해달라고 하길래 두달만에 녹음된 테이프를 들고 찾아갔더니 돌아가셨더라고요."


그는 "우리 전통음악이 정선의 할머니처럼 창작을 계속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그렇지 못해서 전통음악이 향유되지 않는 것이다"면서 "강남스타일은 서구의 노래가 기반이다. 하지만 원타임의 '쾌지나칭칭나네' 같은 노래도 얼마나 충분히 재밌는가. 이란, 인도에서도 민요를 새롭게 창작해서 음반을 내면 수만장이 팔린다"고 했다.


그는 "민요의 창작성을 대중화하고 이를 전통음악계에도 확산하고 싶다"면서 "민요가 대중화해서 명절연휴 하루 정도는 이웃이 모여 앉아 민요를 불렀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는 그러려면 민요의 형태를 지키면서 새로운 민요가 태어나야 한다고 본다.


"이 창작의 기반 중 하나가 내가 그간 모은 소리들일 테지만 서버에 모아둔 방대한 자료들이 제대로 쓰이질 못하고 있다"고 그는 안타까워했다. 최 PD는 언젠가 그 소리들이 새 민요로 대중에게 불릴 날을 기다린다.




박준용 기자 juneyong@asiae.co.kr
백소아 기자 sharp204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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