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시 현행보다 할증폭 훨씬 커
보험료 할증 피하려 자비 처리↑
형평성 시비, 보험사기 더 늘 수도
[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김혜민 기자] #. 중형급 승용차 'K7'을 타고 다니는 직장인 이모씨(여·36). 그는 얼마전 외근을 나갔다가 실수로 조수석 문짝에서부터 뒷좌석 문짝까지 스크래치를 내는 사고를 냈다. 가까운 공업사에 견적을 문의한 결과, 50만원 안팎이 들어갈 것이란 답을 들었다. 한참을 고심하던 이씨는 결국 보험처리 대신 본인의 돈으로 비용을 지불키로 결정했다. 보험 처리를 할 경우 향후 3년간 보험료 할인 혜택을 볼 수 없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앞으로 경미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이씨처럼 보험 처리를 하지 않고 자비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이 20일 발표한 자동차보험 할인·할증 개편안은 경미한 사고라도 횟수가 잦으면 보험료가 대폭 오르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개편안을 적용하면, 보험처리 비용이 50만원 이하 소액이더라도 한 해에 2번 사고를 냈다면 그 다음해 보험료는 최소 27%나 오르게 된다.
금융감독원은 오는 2018년부터 자동차보험의 할인·할증 제도를 사고 경중을 중시하는 현행 '점수제'에서 사고 건수만을 따지는 '건수제'로 전환키로 결정했다. 현재는 건당 사고 크기에 따라 0.5(접촉사고)~4점(사망사고)이 부과되며, 1점당 1등급이 할증되는 구조다. 그러나 건수제로 전환되면 사고의 경중에 관계없이 1회 사고시 곧바로 2등급(50만원 이하 1등급)이 할증되고, 2회 사고부터는 3등급씩 할증된다.
점수제나 건수제 모두 1등급이 할증될 경우 보험료는 평균 6.8% 오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제도 개편 후 사고를 한 차례만 내도 보험료가 곧바로 할증(2등급)돼 이듬해 보험료가 13.6% 인상된다. 2회 사고부터는 3등급씩 할증되는 만큼 사고를 2번 냈다면 이듬해 보험료는 34%(5등급 상승)나 급증하게 된다. 50만원 이하의 경미한 사고라도 2번을 냈다면 4등급(1등급 + 3등급)이 높아져 최소 27.2%의 보험료가 오른다. 만약 세차례 사고를 냈다면 할증율은 47.6~54.5%까지 치솟는다.
보험연구원 관계자는 "건수제 전환 후 등급 상승폭이 커지는 만큼 사고를 낸 운전자의 보험료는 지금보다 더 오르게 된다"며 "소액 사고 때 계약자들이 할증을 피하기 위해 자비 처리를 늘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보험사기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험사에서 보험사기를 전담 조사하는 한 관계자는 "가벼운 사고의 경우 현장 합의로 끝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소액을 노리는 보험사기가 기승을 부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형평성 시비가 일 수 있도 있다. 건수제로 바뀌면 1억원 이상의 보험금이 지급되는 대형 사고와 100만원 미만의 보험금이 지급되는 경미한 사고가 같은 비중으로 처리되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사례지만 대형 승용차인 벤츠로 사망사고를 낸 운전자와 경차인 모닝으로 가벼운 접촉사고를 낸 운전자가 똑같은 비율로 보험료 할증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보험원리에 충실하게 제도를 개선해 사고위험에 부합하는 보험료가 적용될 수 있도록 (제도를)개편한 것"이라며 "자동차 보험 가입자의 80% 정도인 무사고 운전자는 이듬해 곧바로 보험료 할인 혜택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보험료가 할인되는 무사고 기간은 현행 3년에서 1년으로 단축되는데, 이들의 보험료 할인율은 2.6%에 불과하다.
고형광 기자 kohk0101@asiae.co.kr
김혜민 기자 hmee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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