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들의 자금 조달길이 줄줄이 막히고 있다. 회사채시장이 얼어붙은 데 이어 은행마저 순이익이 전년보다 최대 30%나 수직 하락하면서 부실이 우려되는 기업대출을 일제히 축소한 탓이다. 마지막 돈줄 창구라 할 수 있는 저축은행 같은 제2금융권도 적자와 금융감독 당국의 검사 강화로 신규 여신 비중을 줄이고 있다.
1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5월까지 'BB' 등급 이하 업체의 일반회사채 발행 규모가 200억원에 불과했다. 전년 동기(2060억원)에 비해 97.1%나 급감했다. 반면 같은 기간 'AA' 등급 이상 기업의 일반회사채 발행 규모는 15조7140억원으로 전년(13조9490억원)보다 12.6% 늘었다. 이처럼 기업 자금조달 시장에도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심화되면서 신용등급이 낮거나 업황 부진이 심한 기업들은 자금을 조달할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시중 주요은행들도 대출 선별에 나섰다. 동부그룹을 비롯한 대형 기업들이 줄줄이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실적이 곤두박질치자 문제가 될 수 있는 저신용기업에 대한 신규 여신을 대폭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은행, KB국민은행 등 시중 은행들은 이들에 대한 여신 규모를 전년과 비교해 적게는 10%, 많게는 30%씩 축소한 상태다.
시중 은행 관계자는 "저성장 저금리 기조에다 기업들의 부실 여파로 순이익이 크게 줄고 있어 기업 자금 시장이 위축되고 있는 분위기"라며 "특히 신용이 낮은 기업에는 대출의 적정성을 다시 따져보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저신용 기업의 마지막 '돈줄'이라 할 수 있는 제2금융권에서도 자금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금감원이 저축은행에 대한 검사를 상시화하면서 이를 의식한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이 여신 심사에 보수적 잣대를 들이대고 있기 때문이다. 저축은행의 한 관계자는 "당국에서 충당금이나 거래업체 수준을 은행 수준으로 높이라고 주문하고 있다"며 "여신에 신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저신용등급 기업의 자금줄이 꽉 막히면서 자금담당 임원들만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신용등급이 'BB' 수준인 모 제조업체의 자금담당 상무는 "회사의 운영자금으로 30억원 정도가 필요해 알아보고 있는데 2금융권에서마저 대출을 꺼린다"며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사채라도 끌어다 써야 할 판"이라고 토로했다.
고형광 기자 kohk010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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