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최대 마피아 잔치 '월드컵'‥피파귀족의 막장드라마
[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어떤 이는 스포츠 경기를 "운동이 필요한 절대 다수가 전혀 운동이 필요치 않은 극소수의 놀이를 지켜보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오늘날 지구촌의 최대 신앙인 '축구공 놀이' 월드컵은 보는 이들의 가슴 속 뜨거운 감정을 불러 일으키며 전 세계를 열광케 한다.
월드컵 축구 경기를 오랫동안 기다린 사람이라면 이번 브라질 월드컵 경기 관람이 난감할 수도 있다. '축구 왕국' 브라질 사람들이 연일 거리로 나와 격렬하게 '월드컵 반대'를 외치는 모습이라든가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개최지 선정 의혹, 인종차별 논란 등 수많은 갈등과 잡음이 즐거운 관람을 방해할 것이 뻔하다.
그중에서도 독일의 탐사보도기자인 토마스 키스트너가 쓴 '피파 마피아'를 읽는 사람은 더더욱 월드컵 경기를 즐기는 것에 죄책감을 뿌리치기 어렵다. 이 책은 그동안 우리가 모르고 있던 전세계 축구 행정의 어두운 그늘과 피파의 추악한 민낯, 피파귀족들의 부패상을 철저히 파헤치고 있다.
얼마전 브라질 현지에서 현대자동차 지점과 기아자동차 벨루오리존치 공장이 시위대의 피습으로 시설이 파괴되는 등 큰 손실을 입었다. 현대-기아가 지구촌 축제에 돈을 대고도 욕 먹는 이유는 월드컵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됐다. 앞으로 많은 기업들이 월드컵을 통한 스포츠 마케팅에 신중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셈이다. 우선 브라질 상황을 살펴보면 월드컵이 그저 아름다운 축제만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브라질 연방정부는 월드컵 경기장 등 건설비용으로 258억 헤알(약 12조원)을 썼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지출 내역은 대도시 정비 81억 헤알, 경기장 건설 80억 헤알, 공항 확충 63억 헤알 등이다. 브라질은 애초 비용의 대부분을 민자로 해결하기로 했으나 결국 국영은행, 주정부, 연방정부, 시정부가 비용의 86%를 책임지고 말았다. 지난 2010년 월드컵 당시 경기장 건설비용(13억달러)을 포함, 각종 인프라 건설에 3조9600억원을 지출한 것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늘어난 비용이다.
브라질 국민은 교육, 의료, 복지 등 공공 서비스에 쓰여질 돈이 월드컵 대회에 낭비됐다며 연일 시위중이다. 대신 피파(FIFA)의 금고에는 돈이 넘치고, 피파위원들 주변에는 썩은 비린내가 진동하고 있다. 브라질 월드컵은 남아공 월드컵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적자때문에 경기 이후가 더 걱정될 지경이다. 이처럼 월드컵은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수반하고 있으며 심한 경우 전 세계 민주주의를 말살하는 도구로 작용한다.
특히 피파 귀족들은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를 방해하는 무리로 작용한다. 블라터의 후계자를 꿈꾸는 제롬 발케 사무총장은 "월드컵을 조직하는데 좀 덜한 민주주의가 훨씬 더 낫다"고 노골적으로 말할 정도다. 이들은 안정적 민주주의가 월드컵이라는 스포츠 이벤트를 어렵게 만드는 장벽이라는 독재적 관점을 지니고 있다.
왜 그런가 ? 당연히 자신들의 탐욕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무지가 필요하다는 논리가 작용한다. 그들은 인권과 상식, 법, 휴머니티를 무시하고 독재자들과 영합하기를 서슴치 않는다. 피파귀족들은 전 세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들로 여러 나라에 초법적인 특혜-특별한 환율 규정 보장, 입출국 시의 무조건적인 승인, 특급기밀 요구, 돈세탁 방지법 상 예외조항-를 요구해 관철시키기도 한다. 이처럼 피파는 지구촌 최고 '갑질'을 자랑한다.
이들 뒤에는 '장마리 베버'라는 돈가방 전문 배달부가 있고, 비밀정부 역할을 수행하는 보안업체가 가동되고 있다. 또한 상시적으로 비밀요원과 스파이를 활용해 도청과 협박, 폭로, 회계 조작, 각국 심판과 피파위원 매수 등 추악한 일들을 서슴치 않으며 수많은 비밀계좌로 돈을 빼돌리기를 일삼고 있다.
최근 영국 '선데이 타임즈'가 폭로한 카타르 뇌물 스캔들은 빙산의 일각이다. 따라서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개최지를 반납하라는 목소리가 거세다. 이같은 피파의 부패상은 다국적 스포츠용품 제조업체, 각종 스폰서, 정치적 야심가들과 연결돼 있어 흡사 마피아를 연상케 한다.
저자는 피파 회장 및 개최지를 둘러싼 이전투구, 막대한 뇌물, 방송중계권과 관련한 만성적인 부패 등 금권으로 얼룩진 피파의 실상을 20년째 취재해온 탐사보도기자다. 이에 '공은 둥글다'는 말과는 달리 축구행정은 결코 평등하지도, 민주적이지도 않으며 월드컵이 음모가들에게 장악돼 '인류의 최대 제전'을 더럽히고 있음을 밝혀낸다.
여기서 거론되는 인물은 제프 블라터 현 회장을 비롯, 주앙 아벨란제 전 회장, 최근 스캔들의 주인공인 빈 함맘, 제롬 발케 사무총장, 미셸 플라티니와 잭 워너, 펠레, 바켄바워, 회장 선거에서 매번 고배를 마셨던 요한손(스웨덴), 척 블레이저 미국 도박업계의 대부, 정몽준 2002 월드컵 준비위원장, 사마란치와 자크 로게 등 전 IOC 위원장 등을 망라한다. 이들이 서로 얽히고 설켜 만들어내는 각종 스토리는 막장 드라마를 넘어설 정도로 가공할만하다.
피파를 개혁해야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어 2015년 새 회장 선거를 계기로 변화할 수 있을 지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저자는 월드컵과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축구 본연의 아름다움을 되찾기 위해서는 맹목적인 숭배심을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는 이대로 갈 경우 어떤 예기치 않은, 더 큰 참극이 발생할 것이며 피파 귀족들은 작은 가죽공 안에 온갖 더러운 술책과 비리를 계속해서 불어넣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의 핵심은 과도한 축구 열기, 돈 벌이에 혈안인 기업과 민족주의적 성향 그리고 이를 이용한 야심가들에 놀아난 축구신앙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라운드 밖 야비한 협잡을 일삼는 자들을 제거하지 않는 한 축구는 결코 아름다워질 수 없다. <토마스 키스터너 지음/김희상 옮김/돌베개 출간/값 2만원>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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