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저술가이자 대중논객인 '진중권'(사진)은 그동안 30여권의 책을 썼다. 번역서만도 10여권이 이른다. 그러나 그의 학문적 성과는 종종 독설과 논쟁에 가려져 있는 편이다. 위키백과사전에서 진중권을 검색해 보면 관련 항목에 '개념모욕죄', '벌금', '평론',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 등의 어휘가 등장할 정도다. 이는 학자로서의 캐릭터를 구축하고 있는 낱말이지는 않다.
최근 진중권은 '이미지 인문학Ⅰ'(천년의 상상 출간)라는 저술을 내놨다. 이책은 현실과 가상이 중첩하는 파타피직스의 세계를 서술하고 있다. 진중권은 "꼭 읽기를 권한다. 나로서도 다른 책과 달리 이번 저술은 학문적 자부심을 갖는 책이다. 책을 팔려고해서가 아니라 시대의 변화를 놓고 제대로 소통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답게 책 홍보 역시 에두르지 않고 직설적인 화법이다.
"요즘 미디어가 의식을 지배한다. 전에는 텍스트를 통해 세상을 읽었다. 그러나 이제는 디자인에서 미감을 읽고, 게임에서 서사의 감각을 익히는 시대다. 굳이 따지자면 텍스트의 위기며 인문학의 위기다. 이는 메타포가 파타포로 전환하는데서 겪는 문제다. 즉 문자의 자리에 사운드와 영상이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변화를 적절히 수용하고 있는 지를 잘 살펴봐야 한다."
진중권은 대학에서 강의하랴, 강연과 토론 등으로 모자랄 지경이면서도 대중과 소통을 한시도 멈출 줄 모른다. 온갖 소통 수단과 공간을 다 활용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어느 면에서는 독설과 논쟁을 즐기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소통 방식은 전방위적이다. 글쓰기도 그 중의 하나다. 독설과 논쟁으로 가리워진 진중권의 인문학은 동서고금은 물론 사회, 경제, 역사를 넘나들 정도로 보폭이 넓다. 이번에 내놓은 '이미지 인문학 Ⅰ' 또한 역사와 철학, 미학 세계를 두루 누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인간과 기계가 만나는 인터페이스 디자인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이는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인간과 자연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 나아가 인간 자신을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인간은 기술과 더불어 공진화하고 있다."
진중권은 “과거 메타포의 능력이 창조성을 대표했다면 오늘날 파타포의 능력이 창조성을 대표한다"라며 "이것이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상상력의 논리"라고 갈파한다. 여고서 ‘파타피직스’(pataphysics)는 디지털 문화를 의미한다. 본래 파타피직스는 20세기 중반 유럽의 지성계를 풍미하던 신학문으로, 온갖 우스꽝스러운 부조리로 가득 찬 사이비 철학(혹은 과학)을 가리킨다. 따라서 파타포시대에 대한 반성을 내포한다.
"우리는 전자책의 책장을 마치 실제 책인 양 손가락으로 짚어 넘긴다. 이렇게 디지털 가상이 아날로그 현실의 자연스러움을 가지고 다가올 때, 그 익숙함 속에서 디지털 매체의 진정한 본성은 슬쩍 은폐되기 쉽다. 하지만 우리의 망각 속에서도 디지털의 논리는 화려한 가상 아래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그 기제는 늘 의식되고 반성되어야 한다. 텍스트 중심의 인문학은 이제 이미지와 사운드의 관계 속에서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 이는 이미지에 기초한 새로운 유형의 인문학을 요청한다."
진중권은 이번 책에서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만들어낸 미학적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해 여러 작가의 작품을 매개로 하나하나 사례를 들어 보여준다. 가령 다양한 작가와 작품에서 디지털 미학의 세계가 어떻게 변용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즉 역사가 서사와 오락의 소재로 전락하고, 과학실험이 디지털 이미지 프로세싱을 닮아가는 것처럼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약화된 현실을 통찰한다. 이런 문제 의식은 오래전부터 제기된 것이기는 하나 진중권의 '이미지 인문학 프로젝트'가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의 직설과 강렬하고 경쾌한 문체가 섬뜩함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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