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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습격]소갈머리 주변머리(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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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습격]소갈머리 주변머리(51) 낱말의 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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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운도,이덕화로 이어지는
독(禿)선생들이
이마 위쪽에 돋는 털들의
부족으로 인해 당해야 하는 괴로움은,
정말 장난이 아니다.

한 올의 털을 심고 지키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보이는 이들에게
"빛나리"란 희화적인 이름을 발명해내어
그들을 비웃는 데 열중하는
우리 사회이고 보면,
멀쩡한 머리들의 독선이
이미 죄악에 가깝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죄악의 혐의 중에 하나가
이 아름답지 못한 우리말인
소갈머리와 주변머리에도
서성거리고 있다.
소갈머리는 <속알머리>가 되어,
머리의 봉긋한 안쪽이 무모증인 경우를
가리키고,주변머리는 머리통의
가장자리에 돋아있어야할 털이
별 볼일 없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로 굳어져가고 있다.

물론 원래의 소갈머리와 주변머리는
그런 뜻은 아니다.그러나 누군가가
가엾은 독두들의 빛나는 부분에
이 말을 쓰기 시작함으로써,
이젠 아예 그말의 원뜻이 희미해질
정도가 되었다.


소갈머리의 원뜻은
심지(心志)다.원래 속알머리였겠는데,
속과 알은 같은 말이다.내부를 가리킨다.
머리란 얌통머리,처신머리등에서
쓰이는 것처럼 무엇인가를
매우 얕잡아보는 말이다.
즉 마음이나 생각 혹은 뜻한 바에 대한
비칭이다.소갈머리가 없다는 뜻은
염치가 없거나 생각과 사려가 부족하다는
뜻이 된다.즉 속이 없다는 말이다.


속이 없다는 뜻은
참 묘한 말이다.어떻게 들으면
속셈이 없다는 뜻으로 들려
사람이 순수하고 정직하다는 느낌을 준다.
그런데 그 말의 쓰임새를 보면
그런 용처로는 잘 쓰이지 않는다.
오히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고,
자기만 생각하는 비좁은 마음씀씀이를
가리킨다.


이런 점에서 마음을 그릇으로 비유하던
옛 사람들의 통찰은 참으로 알맞다.
속이 없다는 것은 마음의 그릇이
좁고 비좁아,그곳에 충분한 생각을
담을 여유가 없다는 얘기다.
어떤 견해를 고집하기 시작하면
다른 견해를 받아들일 융통성도 없고,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즐거움을 위해서
자신의 이익과 즐거움을 희생할
넉넉한 정신의 탄력성도 없다.
그런 이에게 붙여지는 아주 혹독한 비난이
바로 소갈머리 없다는 말이다.


주변머리란 무엇인가.
주변이란 한자어에서 나온 말이다.
원래 뜻은 <두루두루>란 말이다.
지금은 일을 주선하거나 잘 변통하는 재주의 뜻으로
쓰인다.말 주변이 없다고 할 때의 바로 그 주변이다.
두름손,혹은 수완(手腕)이라고 바꿔쓰기도 한다.
이 말은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데서 빚어지는
사교의 기술이나 사람다룸의 기술에
초점을 맞추는 말이다.


주변머리가 없다는 것은,
융통성도 없고,말도 잘 할 줄 모르고,
남보다 손해보며,행동도 엉성하고
빈틈이 많아 실수를 잘 저지르는 경우다.
소갈머리가 인격의 그릇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주변머리는 사교의 기술을 가리킨다.
소갈머리가 내면적인 미덕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주변머리는 태도와 행동의 실제적인
미덕을 가리킨다.그런 점에서
두 말은 알맞은 대척점에 서있기도 하다.


이 말이 어쩌다가
무모증의 부위를 가리키는 절묘한 말로
대치되어,세상살이의 중요한 두 미덕을
가리키던 옛 지혜를 잃어버렸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곰방대를 두드리며
어리석은 행동과 마음들을 경계하던
옛 할아버지들의 눈에,
한없이 소갈머리 없고
주변머리 없어보일 어리석음들이
득실대는 요즘의 세상 아닌가.


그 말이 가리키는 매서운 의미의 회초리에
정신이 번쩍들어 늦게나마 그 어리석음을
면하는 계기가 되도록,
서슬퍼런 옛 의미들은
죽이지 말았으면 한다.



'낱말의 습격' 처음부터 다시보기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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