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어제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을 계열사 기업어음(CP) 판매와 관련해 사기 혐의가 있는 것으로 검찰에 통보했다. 비슷한 시각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은 비자금 조성과 탈세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재벌 총수가 사기 혐의로 수사 받을 상황에 처하고 탈세 혐의로 조사를 받는 현실에서 우리는 구호로만 준법경영ㆍ윤리경영을 외치는 재계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본다.
금감원은 "상환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허위 사실을 근거로 직원들에게 CP 판매를 독려한 것은 사기에 가깝다"고 밝혔다. 직원들에 대한 지시는 정진석 전 동양증권 사장이 했지만 현재현 회장도 관련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금감원은 지난 10월 계열사 간 자금거래와 관련해 대주주의 위법사항을 발견해 현 회장을 배임 혐의로 검찰에 수사 의뢰한 바 있다.
회사채와 CP 투자에는 투자자의 책임이 따르지만, 동양 사태처럼 사기성 불완전판매로 드러나면 얘기가 달라진다. 현 회장 등 오너 일가는 검찰 수사에 앞서 피해자 보상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사재 헌납을 약속했지만 아직 이뤄진 게 없다. 오히려 계열사에 대한 법정관리 신청 직후 은행 사금고에서 현금과 패물을 찾아가는 추태를 보였다.
현 회장 일가는 동양과 비슷하게 사기성 CP를 팔았다가 그룹의 모체이자 주력인 LIG손해보험을 매각해 피해자들에게 보상키로 한 구자원 LIG그룹 회장의 옥중 결단에서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사재 헌납과 계열사 매각 등 가능한 방법을 동원해 피해자들에게 보상해야 마땅하다. 그것이 상부 지시로 사기성 CP를 판 것을 괴로워하다 목숨을 끊은 동양증권 두 직원에 대한 속죄의 길이 될 것이다.
대기업 최고경영자들은 국민의 눈높이와 사법당국의 경제범죄 처벌의지가 강화되는 시대 변화를 인식하고 기업경영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기업은 망해도 기업인은 산다'라는 그릇된 통념을 버리고 '기업인은 망해도 우량기업은 살린다'는 새로운 가치를 세워야 할 것이다. 금융당국도 재발을 막는 제도 보완과 함께 분쟁조정위원회 등을 통한 선량한 피해자 구제에 나서야 한다. 동양ㆍ효성 사태에서 보듯 증권ㆍ캐피탈 등 금융계열사가 모기업의 사금고로 전락하지 않도록 제2금융권 대주주에 대한 자격심사를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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