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조달청·한국수자원공사, 건설사 50여개 줄줄이 징계
-2014년 SOC 예산 1조원 이상 감축… “먹을 게 없다”
[아시아경제 배경환 기자, 박미주 기자] 건설업계가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시장을 살리겠다며 정부가 내놓은 대책들이 국회에 발목 잡혀 무용지물이 된 데다 이제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기관의 연이은 징계 조치로 숨통마저 위태롭다. 우선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 등으로 위기를 넘기겠다는 전략이지만 이번 사태로 건설산업 전체가 뿌리째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건설업계 등에 따르면 한국수자원공사는 18일 4대강 사업 입찰 담합비리 판정을 받은 10개 건설사를 부정당업자로 지정했다. 지난 14일과 16일 LH와 조달청이 판교신도시와 4대강 사업에 대한 담합 협의로 50여개 건설사에 징계를 내린 후 세 번째 징계다. 특히 수자원공사의 이번 조치 대상에는 앞서 징계 대상에 오른 건설사도 대거 포함돼 대내외 신인도 하락도 불가피한 상태다.
◆“이중, 삼중고… 물량까지 줄었는데”= 공공기관의 이 같은 결정에 업계는 우선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우선 LH 징계의 경우 앞서 같은 사안으로 처벌은 받은 상황에서 LH가 입찰을 또다시 제한한 것은 과도하다는 주장이다. 실제 2006~2008년 발주한 성남 판교신도시 등 8개 지구의 아파트 건설공사에 대한 담합건은 2010년 공정거래위원회가 430억원의 과징금 처벌을 내린 바 있다. A사 관계자는 “같은 사안에 대해 또다시 부정당업자로 처분한 것은 이중처벌이다”고 주장했다.
16일 조달청의 징계 대상에는 대형사들이 집중돼 더욱 눈길을 끌었다. 현대건설, 삼성물산, 대우건설, 대림산업, GS건설, SK건설 등 6개사는 앞으로 15개월, 포스코건설, 현대산업개발 등 9개사는 4개월간 공공공사 입찰에 참여할 수 없게 됐다. 이에 해당 건설사들은 법원에 효력정지 신청과 함께 취소 소송을 내기로 했다.
수자원공사의 징계도 마찬가지다. 4대강 사업 턴키 공사 담합과 관련 현대건설, 대림산업, GS건설은 15개월 입찰 제한 중징계를 내렸고 나머지 업체들은 4~8개월의 입찰 제한 징계를 내렸다.
더 큰 문제는 내년도 사회간접자본(SOC) 등 공공사업 물량이 더 크게 줄어든다는 점이다. 실제 정부가 잡아놓은 2014년 SOC 예산은 23조3000억원으로 올해보다 1조원 넘게 감축됐다. 그나마 책정된 사업은 그동안 진행한 사업이 대부분으로 신규 사업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여기에 공공공사 물량이 앞으로 더 줄어들 것이란 점도 악재다. 정부는 지난 6월 ‘공약 가계부’ 발표를 통해 SOC 예산을 2017년까지 4년간 11조6000억원 삭감하겠다고 발표했다.
앞서 4대강 수주 과정에서 담합 행위를 한 대형사들이 15개월간 입찰제한으로 입을 손실 예상치 12조원도 훌쩍 넘을 가능성이 높다.
◆해외수주 타격될까 전전긍긍= 어려워진 국내 시장을 타개하기 위해 진행한 해외 진출도 불안해진 점도 문제다. 이번 사태로 대외적인 신인도가 떨어질 경우 해외 수주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이미 대형사들의 경우 매출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올리고 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올해 수주 목표(16조6000억원)에서 해외 수주(11조7000억원)가 차지하는 비중이 70.4%에 달한다. 대림산업도 올해 수주 목표인 13조원 중 국내와 해외 부문이 각각 4조3000억원, 8조7000억원이다. 현대건설과 포스코건설 등도 해외사업 비중이 50% 이상을 차지한다.
실제 해외건설 수주액은 증가세다. 이달 초 기준 올해 해외건설 수주액은 총 449억1769만6000달러로 지난해보다 12% 증가했다. 이 가운데 4대강 사업과 LH 아파트 건설공사 등 담합 협의로 부정당업체 처분을 받은 현대건설, 삼성물산, 대우건설, GS건설, SK건설 등 5개사의 수주액이 60.7%에 달한다. 기술력 있는 국내 대형사들마저 휘청일 수 있는 셈이다.
이미 지난 9월 프랑스 유력 일간지 ‘르몽드’는 국내 대형·중견 건설사들의 입찰담합 관련 검찰 수사 관련 “녹색 성장의 상징이었던 한국의 4대강 사업은 부패, 건설 결함, 환경문제로 생태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큰 실패로 기록되게 됐다”며 “4대강 사업 실패가 태국, 알제리, 모로코, 파라과이 등 외국에 이 사업을 수출하고자 하는 한국 기업들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보도했다.
해외건설협회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안이나 이런 것들이 우리나라에 상주하는 주한 대사관에서 번역하고 스크랩해서 다 올려 자국 건설부 등에 전문을 보낸다”며 “국내 건설사들이 담합이나 부정당업체로 지정됐다고 하면 자국 건설공사 발주처에 입찰·선정 때 이를 참고하라고 해 수주에 악영향을 미칠 확률이 크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실상 국내 입찰공사는 자율경쟁 구도가 잘 안돼 업체들끼리 눈치보는 과정이 있는데 이게 담합이 돼 억울한 면이 있다”며 “그런 사정을 잘 모르는 해외에서 봤을 때 국내 건설사들은 일종의 범죄자라고 생각해 입찰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어 결국 해외 수주 감소로 매출이 줄고 연관 업계 종사자들도 타격을 받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분석했다.
배경환 기자 khbae@asiae.co.kr
박미주 기자 beyon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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